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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탕감받는다 주위 시선 따갑지만… 이젠 희망의 빛 보여요” [‘빚투’ 일확천금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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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10 06:00:00 수정 : 2022-08-10 0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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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난 이렇게 회생, 극복하고 있다

유일한 삶의 끈 ‘채무조정제도’
개인회생, 원금 90%·이자 100% 감면
개인워크아웃은 최대 원금 70% 깎아줘
절차·장단점 달라… 상황 맞게 선택해야

‘빚 감면’ 논란은 여전
“투자, 개인 몫… 그에 따른 책임져야” 싸늘
일부는 제도 악용, 도덕적 해이 우려도
전문가 “지원 불가피, 사회적 공감 과제”

‘드디어 코인 대박.’

지난해 3월 프리랜서 강사 이승재(가명·32)씨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가상화폐 시세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때였다. 이씨는 2017년 말 8000만원을 대출받아 시작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2018년 초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금지 법안을 준비 중이라며 거래금지는 물론 거래소도 폐쇄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폭락했다. 코인 투자자들이 이른바 ‘박상기의 난’이라 부르는 이때 이씨도 막대한 손실을 봤다.

마이너스만 거듭하던 이씨에게도 지난해 초 가상화폐 시세가 상승장을 맞이하면서 원금 회복의 기회가 왔고, 이씨는 또다시 1500만원을 빌려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지만, 결과는 실패. 인생을 건 투자는 결국 총 9500만원의 빚만 남겼다.

이씨가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것은 올해 5월이다. 그동안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때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씨의 빚 중 상당 부분은 상각채권(회수가 불가능한 부실채권)으로 간주됐다. 신복위 채무조정을 통해 이씨의 빚은 2500만원으로 줄었다. 이씨는 채권자들이 이 조정안에 동의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8년에 걸쳐 매달 20만원가량을 갚을 계획이다.

두 자녀를 키우는 대기업 회사원 박상현(가명·31)씨 역시 ‘빚투’에 나섰다가 1억5000만원의 빚을 졌다. 이 중 2금융권에서 빌린 돈만 5000만원이 넘는다. 원금을 모두 잃은 박씨는 매달 150만원 이상의 원리금을 내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고정적으로 매달 나가는 300만원가량의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던 중 개인회생 제도를 떠올렸다. 법원은 지난달 초 박씨의 회생계획을 인가했다. 전세대출을 합한 총 3억원의 채무가 2억원으로 줄었다. 박씨의 계획은 앞으로 5년간 매달 약 330만원을 상환하는 것이다.

◆개인워크아웃, 절차 단순하고 신속… 개인회생, 감면 폭 크고 강제성

‘능력껏 열심히 갚으면 나머지 빚은 탕감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이용한 제도는 비슷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 이씨의 경우 신복위 개인워크아웃에 해당한다. 빚이 너무 많아 정상적으로 갚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과 이자율 조정, 채무 감면 등 상환 조건을 변경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반면 박씨가 신청한 개인회생은 일정한 금액을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골자다.

개인워크아웃과 개인회생 사이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개인워크아웃은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이고 총 채무액이 15억원 이하이며,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이 있을 때 신청할 수 있다. 신청 방식이 비교적 단순하고 절차 또한 확정까지 2개월가량 걸리는 등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상환 기간도 10년 이내로 비교적 길다.

그러나 채무 감면 폭이 최대 원금의 70%로 개인회생에 비하면 작다. 무엇보다 법적인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채권자 과반수가 조정에 동의해야 성립된다. 신용회복지원협약에 가입된 금융회사가 아닌, 개인 간의 돈거래나 사채 등은 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다.

반면 법원의 개인회생은 소득이 있고 재산보다 채무가 많으며, 채무가 10억원 이하일 경우에 신청 가능하다. 원금은 최대 90%, 이자는 최대 100% 감면받을 수 있다.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소득으로 3∼5년간 법원에서 정한 변제금을 갚아야 한다.

감면 폭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채무액이 많을 때는 개인워크아웃보다 개인회생을 선호한다. 개인워크아웃과 달리 사채를 포함한 모든 채무가 조정 대상에 포함되고, 별도의 채권자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면책 범위가 넓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고 심사도 까다로운 편이다. 그만큼 인가를 받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2002년 ‘신용카드 대란’ 후폭풍으로 도입… ‘도덕적 해이’ 비판도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된 계기는 2002년 불거진 ‘카드 대란’이다. 김대중정부가 탈세 규제와 더불어 소비를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발급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카드사들의 과잉 경쟁까지 겹쳐 개인의 재정 상태를 따져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신용카드가 발급되면서 당시 수많은 이들이 빚의 늪에 빠졌다. 신용카드 대금을 다른 신용카드로 막는 ‘돌려막기’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다.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하면서 380만명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됐고, 가계부채는 260조원을 넘어섰다. 막다른 길에 몰린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줄을 이었다.

아예 빚 갚기를 포기하고 파산을 선택하는 이들도 폭증했다. 2000년 329건에 불과했던 개인파산 신청은 2002년 1335건, 2003년 3856건, 2004년 1만2317건, 2005년 3만8773건으로 늘어났다. 5년 만에 100배 이상 증가했다. 대금을 받지 못하자 카드회사까지 연쇄적으로 휘청거렸다. 업계 1위였던 LG카드가 매각될 정도로 파장이 컸다. 2002년 10월 개인워크아웃, 2004년 9월 개인회생 제도가 연이어 등장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금융기관의 부실을 최소화하는 한편 채무자에게도 경제활동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취지에도 불구하고 채무조정 제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윤모(33)씨는 “자의로 빚을 내 투자한 사람을 왜 도와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만약 이들이 투자가 실패하지 않고 큰 수익을 얻었다면 자신들의 능력 덕분이라고 내세웠지 않았겠나”라면서 “결국 투자 또한 개인의 선택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빚 탕감 대책이 도덕적 해이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실제로 개인워크아웃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채무 상환을 소홀히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서울회생법원이 지난달 초부터 회생절차를 밟는 채무자가 갚을 돈을 산정할 때,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을 제외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1000만원을 보유한 A씨가 1억원을 대출받아 가상화폐에 전부 투자한다. 이때, 가상화폐 가치가 100만원으로 폭락한다면 채권자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1억1000만원이 아닌 1100만원이 된다. 1억원은 투자 손실금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A씨가 1100만원 이상을 갚을 계획을 세우고 법원이 이를 인가하면 나머지 빚은 탕감된다.

정부 또한 ‘빚투 탕감’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는 “투자 손실 등 애로가 큰 저신용 청년들이 신속하게 재기할 수 있도록 신속채무조정 특례 제도를 신설하겠다”면서 신용 평점 하위 20%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이자를 30∼50% 감면하고,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을 유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 “지원 불가피하지만 사회적 공감대 있어야”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채무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문제를 가만히 놔뒀을 때 대한민국이 얼마나 무너지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진단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멀쩡한 기업이 당장의 자금 부족으로 망하는 것을 구제금융을 통해 막듯, 젊은이들의 손해를 사회가 함께 부담하는 쪽으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겠지만, 인생 시작 단계에서부터 먹구름이 낀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채무 탕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채무조정 절차를 밟고 있는 이들 역시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박씨는 “마치 채무 전액을 탕감해주는 것처럼 뉴스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 같다”며 “신용도 다 포기하고 재산을 청산한다는 전제로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 무작정 감면받은 것은 아니다”고 토로했다.

이어 “개인회생 인가를 받기 전에는 일주일 정도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 이제는 그나마 살길이 보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투잡’을 준비하고 있다는 박씨는 “5년간 근로소득으로 열심히 빚을 갚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씨 역시 최근 본업에 더해 심야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그는 “꾸준히 일하면서 허리를 졸라맨다면 1년 안에 완납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앞으로는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를 시작할 때 이씨의 꿈은 고급 수입차를 사는 것이었다. 이제는 채무를 상환한 뒤, 돈을 모아 동네에 작은 학원을 차리는 것이 이씨의 간절한 꿈이다.


사회부 경찰팀=남정훈·권구성·백준무·이희진·장한서·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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