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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귀찮았을까”… 오늘도 제자리로 가지 못한 ‘양심’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21-09-19 12:00:00 수정 : 2021-09-19 12: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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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카트 사용 후 ‘나 몰라라’ 여전… ‘귀차니즘’에 실종된 시민 의식
카트 보관소 지척인데 여기저기 방치
거친 길바닥에 긁히면서 바퀴 등 훼손
다른 고객이 이용하다 부상 입을수도
“잠깐 시간내면 돌려놓고 올텐데” 씁쓸
지난 13일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인근 인도에 방치된 대형 할인점 카트.

늦은 오후 쇼핑용 카트 1대가 인도에 긴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적막한 길에 덩그러니 있는 거로 미뤄 누군가가 놓고 간 뒤 오랜 시간 방치된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 쪼그린 채 카트 아래를 보니 거친 길바닥에 긁혀 생긴 듯한 흠집들이 바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서울의 낮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린 지난 13일 기자는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주차장 근처 인도에 방치된 대형 할인점 쇼핑용 카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해당 할인점까지는 직선거리로 300여m다.

2016년 서울 동대문구의 한 할인점 인근 주택가를 시작으로 해마다 이어온 ‘버려진 카트 찾기’ 취재의 일환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으로 국내 여행객이 많아진 점을 참고해 김포공항과 인근 할인점을 둘러봤다.

◆잠깐이면 돌려주고 올 수 있을 텐데… 주차장 여기저기 방치된 공항 카트

카트 보관소가 지척인데 여행객 차량 사이에서 방치된 카트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2년 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버려진 카트들을 취재할 당시 “동네 망신”이라며 한 주민이 내뱉은 탄식이 문득 떠올랐다.

이날 공항 주차장에서 발견된 카트는 10여대로, 절반가량은 지척에 보관소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30초도 안 돼 돌려놓을 수 있는 거리였다.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는 카트 1대를 직접 옮겼다. 아스팔트 노면을 따라 손잡이를 잡고 밀어 불과 1분도 안 돼 돌려놓을 수 있었다. 앞서 다른 이용객이 가져다 놓은 카트에 줄을 맞췄더니 금세 깔끔히 정리됐다.

다른 여행객의 보행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민의식은 순간 들었을 이른바 ‘귀차니즘’과 ‘누군가 가져다 놓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에 실종된 듯 보여 씁쓸했다.

이곳에서 만난 여행객 박모(34)씨는 “카트 돌려놓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조금만 시간을 내면 다른 여행객도 편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금 전 그는 차에 여행용 가방 등을 옮겨 넣은 뒤 공항에서 가지고 나온 카트를 보관소에 돌려놓고 왔다고 했다.

◆소비자 양심 믿지만… 숨겨놓은 듯 기둥 옆에서 발견된 카트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300여m 거리에 있는 인근 할인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같은 날 1시간 가까이 지하 주차장 2개 층을 돌며, 제자리에 놓이지 않은 쇼핑용 카트 8대를 발견했다. 대부분 주차장 기둥 근처에 놓여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줄줄이 엮인 카트가 발견된 3년여 전 어느 날이 생각났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할인점의 쇼핑용 카트 1대 가격은 10만~20만원이다. 분실 시 손해도 적지 않아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소비자의 무단 반출까지 일일이 감시할 수 없어 업체의 고충도 그만큼 큰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로 가져나간 카트는 길바닥에 긁히면서 바퀴가 훼손될 수 있고, 이를 다른 소비자가 이용하다 보면 바닥에서 미끄러져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고 업계는 우려한다.

한 관계자는 “할인점 밖으로 카트를 밀고 나가지 못하게 구조물 등을 설치하면 들고 나가는 이도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금지 사항을 강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양심에 맡기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외부에 방치된 카트는 정기적으로 수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한 법률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변호사들은 당시 카트가 할인점의 자산인 점을 언급하면서 건물 외부로 가져나가는 행동이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공항 카트 1대를 끌고 가는 역 직원을 승강장에서 발견했다. 누군가 공항에서 승강장까지 카트를 가져와 짐만 챙기고는 열차에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누구였을까.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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