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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치와 기후 별개”·中 “함께 논의해야”… 기후협력 ‘빨간불’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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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9 10:00:00 수정 : 2021-09-19 10: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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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닭처럼’ 자기 주장만 하는 G2

美 케리 기후변화 특사 4월 中 방문이후
中 견제 ‘전략적 경쟁법’ 상원 외교위 통과
中 블랙리스트 기업 31개→59개로 확대 등
바이든, 동맹들까지 끌어들여 갈등 키워
“기후 대응 함께하자”는 ‘토 달지 말라’ 경고

中, 케리 특사 이달 초 방중 땐 푸대접하며
“협조 이끌어 내려면 압박 중단하라” 요구
관영매체 “美 기후문제 분리 전략은 위선”
가디언 “현상황 ‘계동압강’… 진정한 대화를”
中, 기후협력 ‘美 좋은일’ 여기면 모두 손해

지난 4월 중순 중국 상하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로는 처음으로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가 중국 땅을 밟았다. 케리 특사는 셰전화 중국 기후변화특사와 이틀간 만났고, 이후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532개 단어로 이뤄진 길지 않은 성명에는 ‘협력’이 7번, ‘함께’와 ‘공유’가 각 1번씩 나온다. 두 나라는 평소에는 적이지만, 기후 문제만큼은 손잡는 ‘프레너미’(friend+enemy. 친구+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지난달 31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다시 한 번 중국을 찾은 케리 특사. 이번에도 중국 2인자인 한정 부총리,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 고위급과의 회담이 줄줄이 잡혀 있었지만, 케리 특사는 오직 영상으로만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톈진에 머문 그를 대면한 건 대부분 실무진이었다. 이를 두고 미 정치평론가 앤더스 코어는 ‘(7월 말 베이징을 방문한) 탈레반 대표단도 이보단 나은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자리가 될 COP26을 앞두고 기후외교에 빨간불이 켜졌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기후변화만큼은 ‘완충지대’로 남겨놓자는 합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말하길 “정치와 기후는 별개”

사실 기후변화에 대응할 땐 협력하자는 프레너미 전략은 미국의 아이디어에 가깝다. 케리는 특사로 공식 임명되기 전부터 ‘적과의 동침’은 역사적으로 늘 있었던 일이라며 기후 문제만 따로 떼어놓고 취급하는 게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12월 NBC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 AP연합뉴스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던 나라들이 긴급한 일을 둘러싸고 뭉치는 사례가 역사적으로 많습니다. 기후는 긴급한 사안이고, 우리뿐 아니라 중국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는 이번 방중에서도 “(기후 위기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의 문제다”라며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다섯 달도 안 돼 중국의 태도가 표변한 이유는 뭘까.

미·중 관계는 언제나 경쟁과 갈등을 기본값으로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까지 끌어들여 판을 키웠다. 4월 케리의 방중 이후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일을 짚어보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경쟁법’이 미 상원 외교위를 통과(4월)했고 △이 법은 한층 포괄적인 ‘미국 혁신과 경쟁법’으로 업그레이돼 미 상원을 통과(6월)했다. 또 △미국이 중국의 ‘블랙리스트’ 기업을 기존 31개에서 59개로 늘리자(6월) △중국은 외국의 조치가 중국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폭넓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한 ‘반외국제재법’을 내놨다(6월). △미국을 포함한 G7(주요 7개국) 정상들은 한목소리로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비판하는가 하면 △중국은 반외국제재법을 근거로 미국인 6명과 기관 1곳을 제재하기로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 결정을 내리면서도 “중국과의 경쟁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이런 맥락에서 ‘정치와 기후는 별개’라는 말을 다시 곱씹어보면, 이 또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략임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다른 걸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케리 특사는 2015년 국무장관 자격으로 파리협정에 참여했을 때도 중국이 기후 문제를 다른 이슈의 지렛대로 삼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미국이 “기후 대응에 함께하자”고 하는 건 손잡고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부르자는 것이 아니라 ‘토 달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중국이 답하길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중국이 케리 특사를 푸대접하며 드러내고 싶었던 메시지도 이런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일 ‘워싱턴은 중·미 기후협력을 정의할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의 전략을 위선이라고 주장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미 관계의 엄청난 복잡성을 무시한 채 기후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자는 미국의 주장은 바이든 행정부를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중국에 대대적인 제재를 가하던 미국이 갑자기 친구 같은 얼굴로 돌아서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협조를 요청한다. 미국이 중·미 협력을 자의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기후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정치적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미 관계의 큰 그림 속에서 다시 생각하자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중국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AP연합뉴스

이달 초 케리 특사와 화상으로 만난 한 부총리와 왕이 부장 등도 일제히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위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며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대(對)중국 압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서로 자기 말만 할 뿐 소통은 하지 않는다는 뜻의 중국 사자성어 ‘계동압강’(雞同鴨講·오리에게 말하는 닭)을 인용하면서 진정한 대화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G2 바라보는 세계는 ‘답답’

오리와 닭처럼 자기 주장만 하던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9일 7개월 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악화일로의 두 나라 정상이 직접 소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음달 이탈리아에서 열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보다 의미있는 관계 회복을 기대할 수 있고, 11월 COP26에서 중국이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내놓으면 금상첨화다.

기후위기 시대에 벌어지는 두 강대국의 대결은 지구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두 나라가 뿜어대는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의 40%에 이른다. 특히 중국의 배출량은 미국과 유럽연합(EU) 27개국, 일본, 한국의 배출량을 다 더한 것보다 많고 3위 인도의 4배, 4위 러시아의 6배에 달한다.

중국은 1년 전 ‘2030년 전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을 찍고, 206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중국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신규 석탄발전 규모는 38.4GW(기가와트)였는데 이는 중국을 뺀 나머지 나라의 신규 석탄발전 설비용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3배나 많은 규모다.

에너지에 목마른 중국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도 빠르게 늘리고 있지만, 아직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밑돈다.

지구 온도 억제의 중요한 키를 쥔 중국이 기후 협력을 ‘미국 좋은 일’로 여기는 것은 모두에게 해롭다. 미국의 40여개 진보단체는 바이든 대통령과 하원에 서한을 보내 ‘신(新)냉전 관계가 기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05년 대비 50∼52% 줄이고, 2035년에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이행수단이 담긴 3조5000억달러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할지 불분명하다.

제리 브라운 UC버클리 캘리포니아·중국 기후연구소장은 CNN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이 스스로 목표를 달성할지 알 수 없으면서 ‘미국이 더 나은 길을 가고 있다’는 가정 아래 지금과 같은 전략을 취하는 건 나중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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