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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된 기후변화… 변방서 주류 정치권으로 진입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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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5 07:00:00 수정 : 2021-07-25 08: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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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녹색당 현주소

친환경 토대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추구
1960년대 ‘신좌파’ 사회·학생운동 모태
1972년 영국·호주·뉴질랜드서 첫 결성
유럽 강세… 2004년 라트비아 첫 총리 배출
양당제 확고한 美선 아직 연방의원 없어

獨 녹색당 베어보크 대표 첫 집권 노려
‘비현실적 젊은이·부자 진보정당’ 평가도
유럽 일부 노동자 정당으로 탈바꿈 시도
美 외교협 “기후변화 효과적 대응 미지수”
“비폭력 유지 여부 알수없다” 회의론 여전
지난 14~15일 독일을 포함해 서유럽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우와 홍수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 서부의 초대형 산불, 독일과 벨기에를 비롯한 서유럽의 폭우 사태 등 세계 각국이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기후변화 재앙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역내로 수입된 제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고, 2035년에는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한다. 미국 민주당도 ‘탄소조정세’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구촌 생태계를 뒤흔드는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녹색 전쟁’이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주변부에 머물던 녹색당(Green party)이 주류 정치권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어보크 대표가 올가을 사상 처음으로 집권을 노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요국의 녹색당이 친환경 노선과 함께 에너지, 경제, 외교, 안보 등 국정 전 분야에 걸쳐 뚜렷한 정체성을 정립한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해 보수와 진보로 갈린 기존 정당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아직 불확실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지지 기반을 확대해가는 지구촌 녹색당의 현주소를 심층 점검해본다.

◆녹색당의 정체성

녹색당은 대체로 친환경 노선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경제 개발과 인본주의를 추구한다. 미 외교협회(CFR)는 최근 보고서에서 녹색당의 4대 특성으로 생태환경의 지속성,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정의, 비폭력을 꼽았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녹색당 정강·정책을 보면 대체로 전쟁과 방위산업에 반대하고, 핵무기 개발과 사용을 배격한다. 권력 분산, 지방화, 인종차별 반대, 경제정의 실현,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것도 녹색당의 특징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녹색당은 80개가량이라고 CFR가 밝혔다.

녹색당은 대체로 진보 좌파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전통적인 진보 정당과는 다르다. 녹색당은 정치·사회적 이슈로 보면 좌파에 속하나 분권화된 의사결정과 주요 이슈의 지역 해결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사회주의 계열 정당과 차이가 있다. 정당연합 체제로 집권하는 유럽 국가의 정국 구도 속에서 녹색당이 킹메이커 역할을 맡는 수가 많다. 이렇게 정부에 합류한 녹색당은 공공정책이나 민주주의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 감시 단체인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세계 주요 국가에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나 포퓰리즘의 득세로 민주주의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후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정부의 방역 실패로 기존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5년부터 본격화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출신 이민자들의 유럽 국가 쇄도, 대형 연쇄 테러 사건 등으로 유럽 국가의 일부 유권자들이 중도 성향의 기존 정당에서 이탈해 좌파 또는 우파 대안 정당을 찾고 있다. 녹색당은 그 틈새를 파고들었고, 좌파 또는 우파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을 두루 끌어모으고 있다. 최초의 집권을 노리는 독일 녹색당은 EU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지지하는 등 중도층 유권자를 겨냥한 유연한 정책을 수용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녹색당은 1960년대의 사회 변혁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 삶의 조화라는 이상 사회를 꿈꾸는 ‘신좌파’ 사회운동과 학생운동이 모태가 돼 녹색당이 1970년대 초부터 각국에서 정치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에서 처음으로 녹색당이 결성됐다. 영국의 녹색당은 생태계 붕괴를 경고하고, ‘생존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제도권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녹색당은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1980년대부터 주요 선거에 후보를 내기 시작했고, 1983년 당시 서독 의회에 27명의 의원이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녹색당은 1990년대부터는 유럽 전역에 걸쳐 전국 및 지방 단위 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입지를 굳혀나갔다.

그렇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가 확고하게 정립된 미국에서는 녹색당이 여전히 연방 단위의 선거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랠프 네이더가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전국적 주목을 받은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네이더는 2000년 미 대선에도 출마했고, 그 뒤 미국에서 전국 단위 녹색당이 결성됐다.

지난달 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97번 고속도로를 따라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인근 지역 주민들이 급히 대피했다

◆파워 브로커로 도약

녹색당이 가장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는 곳은 유럽이다. 녹색당은 2000년대 들어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정당연합의 형태로 집권당에 참가했다. 라트비아에서는 지난 2004년 녹색당 출신 총리가 처음으로 나왔다. 녹색당이 2017년에 처음으로 뉴질랜드에서 집권 여당의 일부로 참여했으나 캐나다에서는 녹색당 출신 연방의회 의원이 현재 3명뿐이다.

미국은 녹색당 후보가 연방 상·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적이 아직 없다. 다만 주(州)의회 등에서 117명의 의원 또는 선출직 공무원이 활약하고 있다. 녹색당 출신 정치인들은 ‘그린뉴딜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를 연방정부 차원의 과제로 만들어 집권당인 민주당의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2000년 미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2.7%의 지지를 얻은 네이더의 경우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초박빙 대결을 펼친 그해 선거에서 고어 지지표를 잠식함으로써 부시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남미의 멕시코에는 녹색당이 지난 10년 사이에 500명의 하원의원 중 47명, 128명의 상원의원 중 9명을 배출했다. 콜롬비아 상·하원에는 9명의 녹색당 의원들이 포진했고, 보고타 시장도 녹색당 출신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는 녹색당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녹색당의 미래

세계 각국에서 녹색당은 비현실적인 젊은이 또는 일부 부자 진보주의자 정당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녹색당은 유럽 국가 등에서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정당으로 탈바꿈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성장 정체, 일자리 부족 사태에 직면해 녹색당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에서도 현대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녹색당의 강령은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가 환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유류세 인상을 추진하자 이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이듬해 봄까지 계속 이어졌다. 각국 녹색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기후변화 대책이 사회적인 약자층에 더 큰 부담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독일에서 녹색당 출신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을지 주목을 받는 아날레나 베어보크 대표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됐던 녹색당의 40세 여성 총리 후보인 베어보크가 최근 표절 논란에 휩싸여 총리 당선이 불확실해졌다. 베어보크 총리 후보의 고전으로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독일을 강타한 대규모 홍수 사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국정의 최고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녹색당은 여전히 독일 정가에서 ‘태풍의 눈’이다.

녹색당이 기후변화 문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CFR는 지적했다. 녹색당이 극우 또는 극좌 정당과 연대하거나 비폭력 노선을 어느 선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회의론도 여전하다. 오스트리아 녹색당은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위해 보수당인 국민당과 연대해 반이민, 감세 노선을 수용하기도 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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