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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나”… 살길 찾아 ‘줄대기’ 국정현안 미루고 ‘복지부동’

입력 : 2021-06-17 18:43:14 수정 : 2021-06-18 11: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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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처·지자체 백태

LH사태·원전수사 등 보며 몸사려
추후 책임질 일 회피 분위기 팽배

청와대는 대통령 행사 실수 연발에
군, 부실급식에 성폭력 ‘쉬쉬’ 뭇매
하위직선 정부 경고에도 코인 열풍

“정권 말일수록 감사원 역할 더 강화
장기적으로 선출직 인사권 최소화”

#. 한 경제부처 A 간부는 오후 4시 이후만 되면 행방이 묘연하다. A 국장은 개방직 공모를 통해 공무원이 될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권 말기 어수선한 관료 집단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살길’을 찾아 나섰다. A 국장은 외출이나 조퇴 등을 신청도 하지 않은 채 서울에서 개인적으로 로펌 인사 등과 접촉하고 있다.

 

#.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B 과장의 별명은 ‘각 1병’이다. B 과장은 11시만 넘으면 점심시간을 시작해 1시30분이 훌쩍 넘어서야 사무실에 복귀한다. 그의 점심 자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반주가 오른다. 동석자 수에 따라 각 1병씩 술을 마신 뒤에야 점심 자리가 끝나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총리실 감찰이 뜬다는 소문이 돌 때만 반짝 조심할 뿐이다. 요즘처럼 정권 말에는 B 과장의 술자리는 더욱 잦고 길어진다.

문재인정부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무원의 공직기강 해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장과 부하 직원이 몸싸움을 벌이다 감찰을 받는 부처가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근태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도 수두룩하다. 여기에 실수로 치부하기 힘든 크고 작은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정권 말 권력 누수 현상이 공무원 조직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감찰 조사 중인 국장과 사무관의 낮술 몸싸움 사건은 공직기강 해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사건 당일은 공정위 내부적으로는 삼성 계열사의 부당지원 의혹에 대한 전원회의가 열리는 날로, 위원장이 종일 심판정에 있는 ‘무두절’이었다. ‘무두절’이란 공무원들 사이에 통용되는 말로, 장차관 등 상관이 없는 날을 뜻한다. 주요 사건에 대한 심의가 열리는 날, 위원장이 없는 틈에 공정위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술판을 벌이고 몸싸움을 한 꼴이다.

 

임기 말 고질병인 공무원의 복지부동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 쟁점이 되는 사안이나 민원은 뒷전으로 미뤄두는 식이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일수록 이런 경향은 짙어진다.

청와대 인스타그램 갈무리.

특히 향후 논란을 빚을 수 있는 주요 국정 현안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탈원전 정책을 주도했던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이 같은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경제부처 A 과장은 “최근 LH나 한수원 상황을 보면서 공무원들이 더욱 조심하는 경향이 생긴 게 사실”이라며 “더군다나 임기 말에는 정권에 따라 나중에 어떤 상황이 나올지 모르니 몸을 사리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나타난 사건·사고들도 공직기강 해이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에서는 인스타그램 공식계정에서 오스트리아 국기 대신 독일 국기 그림을 삽입한 사고를 냈고, 교육부도 수치를 잘못 기록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단순 실수라고 할 수 없는 사고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에서도 올해 들어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기강 해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가 촉발한 장병 부실급식 논란, 올해 초 북한 남성이 동해상으로 헤엄쳐 귀순하면서 군 경계망에 허점이 드러난 사건에 군 성폭력까지 불거졌다.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은 군 동료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이모 중사는 지난 3월 초 같은 부대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후 5월 22일 20비행단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을 둘러싸고 회유·은폐와 2차 가해 정황이 드러났으나, 군 수사기관과 양성평등센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방부는 검찰단과 감사관실, 조사본부까지 투입하는 등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강조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 가능성을 여전히 제기하고 있다.

 

지자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북 전주시에서는 최근 한 달 새 공무원 3명이 잇달아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대전시에서는 6급 주무관이 상급자와 마찰을 빚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지난 1월 간부 경찰관 등 5명이 상점에 모여 카드 도박을 하다가 적발돼 즉결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해당 경찰관은 5인 이상이 모여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적발됐다.

근무 시간에 주식을 하거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방의 한 공무원은 “동료가 코인으로 큰 돈을 벌었다기에 뛰어들었다가 큰 손실을 보고 있어 일손이 안 잡힌다”면서 “요즘 코인 안 하면 바보 취급 받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직무상 가상화폐와 관련이 있는 공무원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보유는 물론이고 거래도 금지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배포했지만 현장에서는 무색할 뿐이다. 연차가 어린 사무관이나 주무관들 사이에서는 누가 얼마를 벌었다거나 손실을 봤다는 얘기로 사무실이 뒤숭숭하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권 말 폭언, 폭행은 개인적인 비위로 볼 수 있지만, 정말 안 좋은 것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심해진다는 것”이라며 “정권 바뀌면 인사권자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괜히 열심히 일했다가 다음 정권 때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기 말이라도 대통령이 감사원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선출직의 인사권을 최소화하도록 인사시스템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편집국 종합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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