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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용비리 꼬리 자른 검찰 [데스크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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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0 22:55:59 수정 : 2021-04-21 08: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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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인 부정채용 증거에도
檢 시간 끌다 8명 약식기소
2차 수사 동력마저 끊어버려
공정 기준 처분 합당성 의문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은 ‘LG전자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이 회사 임직원 8명을 약식기소했다. 약식(略式)기소는 검사가 범죄 피의자에 대하여 징역형이나 금고형보다 벌금형이 합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소와 동시에 벌금형에 처해 달라고 법원에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검찰 처분은 합당한 것인가.

작년 2월 서울경찰청은 ‘LG전자 한국영업본부에서 조직적인 부정채용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범죄 첩보를 입수했다. 사실이면 계층 간 이동성이 둔화하고 있는 지금, ‘흙수저’가 ‘개천용’이 될 수 있는 사다리를 끊는 불공정 행위였다. 특히 LG 여러 계열사 임원이 청탁자로 등장했다. 그룹 전반에 부정채용의 관행이 만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렀다. 경찰은 내사 착수 석달 만에 검사와 판사를 설득, 압수수색 영장을 받는 데 성공한다. 전언(傳言) 수준인 첩보를 감안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할 만했다.

 

압수수색도 성공적이었다. 수사팀은 서울 중구 LG서울역빌딩의 LG전자 한국영업본부 인사팀에서 채용 청탁자와 입사자 등이 정리된 ‘관리 리스트’를 확보했다. 수사 성패를 가를 수 있는 기밀문서였다. 이 리스트에 적시된 인원만 50명을 넘었다. 경찰은 동시에 LG전자 데이터가 보관된 마포구 상암IT센터에서 이력서, 채점표 등 인사 기초 자료를 확보, 부정 입사자의 점수 조작을 밝혀냈다. 이로써 첩보는 사실로 확인됐다. 경찰은 작년 10월 LG전자 임직원 1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면접위원과 법인의 심사·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였다. 현행법상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1500만원 이하에 처해지는 범죄다.

애초 수사 범위는 2013∼2015년에 한정됐는데도 ‘관리 리스트’에는 권영수 LG화학 사장(현 ㈜LG 대표이사 부회장), 남용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전현직 최고위직까지 이름이 올라있었다. 이후 수사팀은 ‘2015년 이후’에도 부정채용 사례가 있는지를 파고들었고 ‘2015∼2019년’ 리스트까지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LG의 채용 부정은 ‘진행 중인 범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검찰의 행보가 이상해졌다. 경찰이 추가로 확보한 리스트의 ‘증거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혐의를 입증하라”는 주문을 반복했다.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영장을 신청했는데 영장을 신청하려면 혐의를 입증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더 깊이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현일 특별기획취재팀장

LG전자는 사건 초기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해 대응했지만 돌연 김앤장으로 교체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을 막지 못한 경질성 교체였다는 말이 돌았다. 경찰의 추가 영장 신청이 거부되자 법조계에서는 수사가 2015년 이후로 확대되지 않고, 한국영업본부를 넘어 본사로 번지지 않도록 김앤장이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이 수개월 동안 경찰의 추가 영장 신청을 기각하면서 1차 수사 보강만 주문한 점도 수사관행에서 벗어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결국 수사가 1년을 넘어서고 신청한 영장은 연거푸 기각되는 바람에 경찰의 2차 수사는 동력을 잃고 말았다. 검찰은 이렇게 송치된 12명 중에 8명만 약식기소했다. 법원이 이 사건을 정식재판으로 돌리지 않고 약식재판을 한다면 기소된 8명은 벌금 고지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이 종료될 것이다.

2019년 검찰은 딸의 KT 특혜 채용에 개입한 혐의로 김성태 전 의원과 이석채 전 KT 회장을 기소한 적이 있다. 검사는 이들에게 각각 4년, 2년의 징역형을 구형하면서 “뇌물 1억원과 딸의 대기업 취업 중에서 더 나은 것을 고르라면 솔직히 어렵다”고 말했다. 자녀 특혜 채용이 뇌물 1억원보다 결코 작지 않은 유혹이란 취지의 질책이었다.

대다수 청년들이 선호하는 민간 기업 채용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돼 이 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낙방한 청년들을 좌절과 허탈감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이 김성태 전 의원 등의 채용 청탁 사건보다 가벼운 범죄인가. 검찰은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수사 행태가 쌓인 끝에 ‘검찰 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조현일 특별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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