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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역 ‘물의 정원’에는 영화 속 풍경 같은 자전거길이 있다.

연둣빛 봄이 내려앉은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봄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 젊은 여인이 열심히 걸음마를 시키고 있다.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 여인의 칭찬과 박수 소리에 자신감을 얻고 있는 사람은 이제 막 돌 지난 아기가 아니고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다. 할머니는 여인의 시어머니이며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며느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할머니는 오늘보다 내일 더 오래 걸을 수 있고 그만큼 더 행복한 봄을 누릴 수 있을 거다.

들꽃이 잔잔하게 수놓인 강가. 꼭 그 장소에 노부부는 앉아 있다. 아내는 휠체어에 앉아 있고 남편은 보온병에서 따뜻한 커피를 따라서 아내의 입가에 대준다. “아내는 커피를 참 좋아해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어눌해서 표정으로 답하는 아내. 남편은 ‘참 예쁘다’며 아내의 모습을 사진 찍는다. 아내는 부끄러운 듯 손을 내젓는다. 노부부의 웃음소리는 라일락꽃 향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진다.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중간쯤 딸기주스를 파는 곳이 있다. 어느 날 그곳에 작은 좌판이 놓여 있다. 한눈에 봐도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동그란 컵받침이 쭉 놓여 있다. 나비와 꽃이 수놓인 컵받침은 이 계절이 반드시 화사한 봄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새댁은 출퇴근이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남편이 너무 안쓰럽다. 비싼 전셋값에 떠밀려 이곳까지 왔다. 남편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었다.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좀 더 적극적인 일을. 그래서 컵받침을 만들어서 팔러 나왔다. 다행히 비닐하우스 딸기주스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자리를 내어 주었다. 한 장에 2000원인 컵받침을 다섯 개 샀다.

가격이 너무 싼 것 같다는 내 말에 새댁은 그저 미소만 짓는다. 서양 속담에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는데 새댁한테는 예외가 될 듯싶다. ‘사랑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가난은 창문으로 나간다.’

주홍빛 노을이 사르르 번지는 시간, 한 청년이 수줍게 뭔가 흥얼거리고 있다. 자세히 들어 보니 노래다. 청년은 한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오디션에 나갈 생각이다. 가수가 꿈인데 생활에 등 떠밀려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번에는 꿈에 날개를 달아 보고 싶었다. 마땅히 노래 연습할 장소가 없어서 물의 정원으로 나왔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다. 청년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맘껏 부르라고 응원하며 기꺼이 청중이 되어준다. 잠시 쭈뼛쭈뼛하던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 그건 어쩌면 나 자신을 응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긴 삶의 여정에 우리가 쉽게 지치지 않는 이유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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