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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문명이 화려한 꽃을 피운 때는 청동기 시대다.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는 철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번쩍이는 청동 창과 갑옷. 그렇다고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졌을까. 신화를 만든 그리스인들. 그 신화는 지금 문화의 샘과 같은 존재다.

키메라(chimera). 그때 만들어진 신화 속의 괴물이다.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뱀. 불을 토한다. 반인반수의 괴물 티폰과 에키드나의 딸이다. 인간과 가축을 잡아먹는다. 포악하기만 했을까.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연합군 사르페돈의 장수인 안팀니오스와 마리스. 그들의 아버지 아미소다로스에 대해 호메로스는 이렇게 적었다. “아미소다로스는 파멸의 괴물 키메라가 기른 사람이다.” 괴물의 가슴에는 정과 사랑이 꿈틀거린다.

고대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키메라는 생명과학 용어로 바뀌었다. 한 생명체에 유전자가 다른 이질적인 세포가 섞이거나 하나의 유전자에 두 가지 이상의 유전자가 섞여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DNA 파편을 뒤섞어 새 생명체를 창조하는 존재. 그것을 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 소크 연구소와 중국 쿤밍대 연구진이 긴꼬리원숭이 배아에 인간 피부세포로 키운 줄기세포를 이식해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과거 양·돼지 배아에 인간 줄기세포를 이식한 실험 결과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전에는 세포 10만개 중 하나꼴로 인간 세포가 만들어졌지만, 이번에는 10만개당 3000∼4000개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희망의 빛일까. 이식받을 장기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복음과 같은 소식이다. 생명공학의 기념비적인 연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축복일까. 인간 줄기세포를 이식·배양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신경세포가 동물의 정신 능력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원숭이가 인간처럼 사고하는 존재로 변화한 것처럼. 생명윤리학자 줄리언 사불레스쿠 옥스퍼드대 교수는 말했다. “인간과 동물의 키메라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고.

약 3000년 전의 상상이 현실화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동물해방’을 외치는 키메라들…. 이래저래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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