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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가치’ 훼손에 분노… MZ세대, 사무직 노조 결성 붐

입력 : 2021-04-18 09:14:33 수정 : 2021-04-18 10: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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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직 근로자 전유물 노조 운동에 새 바람

현대차, 성과급 논란에 설립 법리 검토 중
금호타이어, 생산직과 차별 이유로 결성
중견 게임사 웹젠, 업계 네 번째 노조 출범
카카오뱅크·한글과컴퓨터 등도 만들어

현대차 사무직 희망 사항 1위 ‘제도 개선’
LG전자, 동일 업종 대비 낮은 연봉 불만
“과거엔 노조를 임금인상 도구로 여겼지만
이제는 일터 존엄을 지키는 존재로 인식”
대기업 사무직들의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생산직 노동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왔던 노조 운동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MZ세대(1980∼2000년대생)로 불리는 20∼30대 직원들이 주축이 된 사무직 노조 설립 움직임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새로운 노조 문화의 시발점이 될지 각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무직 노조 결성 물결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사무직이 중심이 된 ‘HMG(현대차그룹)사무연구노조’(가칭)는 최근 노무사·노무법인 5곳을 선정하고 노조 설립을 위한 조언을 받고 있다. 오는 18일까지 노조 설립을 위한 법리 검토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카카오톡 오픈 카톡방과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소통하고, 구글 설문지를 통해 의견을 모은다. 최근 이 노조 밴드 가입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 현대차 전체 직원 7만여명 가운데 사무직 직원은 2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노조 설립을 논의하게 된 것은 성과금 논란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자동차 업계에 사무직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잇따른다. 금호타이어에서는 최근 사무직 노동조합이 지방노동청으로부터 설립 신고증을 받았다. 전체 직원 5000여명 중 사무직은 1500명이지만 그동안 생산직 중심으로 노조가 운영돼 온 것에 대한 불만이 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

게임·IT(정보기술) 업계에서도 노조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중견 게임사 웹젠은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엑스엘게임즈에 이어 네 번째 게임사 노조를 출범했다. 이들은 개발 직군에 집중된 연봉 인상 바람에서 소외된 비개발직 사무직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카카오뱅크, 한글과컴퓨터 등에서도 노조가 결성됐다.

◆‘이념’보다는 ‘공정’ 가치에 분노

최근 사무직 노조의 결성 분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2018년 설립된 네이버 노조가 자리한다. 당시 이들은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조직문화’, ‘불투명한 의사결정’, ‘포괄임금제 등 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최근 다시 일고 있는 사무직 노조 설립 움직임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HMG사무연구노조 집행부가 최근 진행한 자체 설문조사(250명 참여)에 따르면 현대차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회사에 바라는 점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사안은 제도 개선(19.6%), 성과급 기준 불투명(14.4%)과 아울러 투명성(4.4%), 공정성(4.4%)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네이버 노조 설립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던 사무노조 설립 분위기는 최근 LG전자에서 다시 촉발됐다. LG전자 사무직들은 동일업종 대비 낮은 연봉과 성과급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제기해 공감대를 일으켰고, 결국 노조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LG전자 사무직 노조 밴드 가입 인원은 8000명을 넘었다. 이들은 단순히 낮은 임금이나 회사에 대한 불만보다는 공정의 가치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하는 데 크게 분노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지난해 노사가 임금 동결 후 생산·품질 경쟁력 향상을 위한 격려금 100만원을 생산직에만 지급하기로 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표출돼 결국 사무직 중심의 노조 설립을 촉발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150%, 코로나 위기 극복 격려금 120만원에 합의했다. 그러자 사무직들은 생산직 직원들이 임단협이 길어지면 성과급을 받지 못하고 퇴직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 합의를 서둘렀다고 비판했다. 특히 젊은 사무직과 연구직 직원들의 목소리가 협상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컸다.

◆‘MZ세대’의 유쾌한 반란, 새로운 노동운동 될까

노동계 안팎에서는 최근 대기업 사무직 노조 결성 움직임이 기존 노조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은 기존에 임금이나 정년에 집중했던 활동 목표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과 근거에 의한 대우,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근무환경 등을 더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설립 준비 밴드나 직장인 익명 게시판 등에 남긴 주장을 보면 “단순히 임금이 낮은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그 이유가 공정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는 취지의 글이 주를 이룬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MZ세대를 필두로 최근 직장인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이전 방식의 조직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지만 기업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본다”며 “과거에는 노조가 임금 인상이나 고용 안정의 도구로 사고됐다면 이제는 일터의 존엄을 지키고 직장 내 갑질이나 괴롭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보호막 역할하고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했다. 오 위원장은 “노조 운동의 방향이나 관점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병욱·김건호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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