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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대의민주주의 작동 장치
여야 막말·비방 진흙탕 싸움 일관
미래 비전 제시는 뒷전으로 밀려
우리가 왜 선거를 하는지 묻게 돼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주 사전투표 첫날 찾아간 동주민센터의 투표소에는 유권자들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이어선지 서두르는 이가 없었고 대체로 차분했다. 여당과 야당의 요란스러운 유세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왜 선거를 하는지 묻게 된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를 작동케 하는 장치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대표는 그 권력으로 유권자들을 대신해 공무를 집행한다. 아일랜드 정치학자 데이비드 파렐은 저서 ‘선거제도의 이해’에서 “선거제도는 민주주의라는 수레의 큰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하는 작은 톱니바퀴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며 “선거제도의 주된 기능은 정치체제를 무리 없이 작동하게 하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박완규 논설실장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시 대표자를 선출한다. 유권자들이 시정을 맡길 만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관심사가 다르다. 여당은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고, 야당은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도다.

그래서인지 선거가 어수선하다. 선거가 실시된 이유부터 꺼림칙한데 선거운동 기간에는 막말과 비방이 난무한다. 이명박근혜 시즌 2가 돼선 안 된다는 여당 주장이나 문재인정권의 폭주를 막아달라는 야당의 호소는 진부한 데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지도 의문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이 다른 이슈들을 삼켰고, 부산시장 선거도 ‘성추문 거짓 증언 사주’ 의혹 등 온갖 폭로가 잇따랐다. 여야 공히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입하고 고소·고발이 줄을 잇는다. 이성은 사라지고 감성만 용솟음치는 진흙탕 싸움이다. 정책 경쟁은 언감생심이다.

1년 남짓 남은 잔여임기를 채울 인물을 뽑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과열 양상을 빚는 것은 내년 3월9일 치러지는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야 서울시장 후보들보다 전직 검찰총장의 사전투표가 관심을 끈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낙담하게 된다. 미래 비전보다 선거공학에 열중하는 행태가 내년 대선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여권이 일방적인 졸속 입법과 내로남불 행태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잇단 실언 등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임기 말과 겹치면서 우려를 낳는다. 여당 지도부가 연일 반성문을 내놓아도 반응이 냉담하다. 선거 차원을 넘어 남은 임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와 여당이 각성해야 할 때다.

문학비평가 황현산은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시대의 비천함’을 지적했다. “어떤 원칙도 없이 허욕과 허영에 기대어 아슬아슬한 연극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며 “바로 우리의 비천한 삶”이라고 했다. 불신의 문화가 모든 결과를 양적으로만 따지게 하는 토양, 부적격자가 유권자들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현실 등이 고통을 준다면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치르는 선거가 유권자들의 축제는 못될망정 고통의 진원지여서야 될 말인가. 마땅히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투표소에 갔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표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는 다시는 이런 식의 선거를 치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두서없이 혼란에 빠져들어선 안 된다. 재보선이 끝나고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선거가 무엇인지부터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위선과 독선을 버리고 공정과 협치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네거티브 공세를 접고 비전을 얘기하길 바란다. 일부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대표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비전을 아우를 수 있는 개방된 개념’이다. 여야 후보들이 못한다면 유권자만이라도 선거를 잘 치러내야 한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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