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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파문' 신경숙, 칩거 4년만에 작품활동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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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3 08:36:42 수정 : 2019-05-23 08: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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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신드롬'의 소설가 신경숙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엄마 신드롬'의 소설가 신경숙(48) 씨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공식 출간됐다. `플리즈 룩 애프터 맘'(Please Look After Mom.번역 김지영)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유명 문학 출판사인 크노프를 통해 출간된 이 책의 영문판 출판기념회가 맨해튼 한국 총영사관에서 이날 저녁 개최됐다. 사진은 인터뷰를 갖는 신경숙 작가. 2011.4.6 kn0209@yna.co.kr/2011-04-06 14:40:05/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소설가 신경숙(56)씨가 작품 활동 재개에 나섰다. 2015년 단편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래 불거진 표절 파문 이후 칩거에 들어간 지 4년 만이다. 신씨는 23일 발간된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200자원고지 220매 분량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고 소회도 따로 밝혔다.

 

신경숙은 발표 소감 글에서 “지난 4년은 30년 넘게 이어진 제 글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 길고 쓰라린 시간이었다”면서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의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돌아보았다. 신씨는 이어 “4년 동안 줄곧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혼잣말을 해왔다”면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린 것은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신경숙은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이라며 “제 자리에 서 글을 쓰는 일로 다시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떠내려가는 것들을 건져내고, 닫힌 문은 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메마른 것들에게 물을 주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는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의 눈빛과 음성”이라며 “저는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 써서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 발표한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는 절친 허수경 시인이 지난해 작고하기 전 자신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통화 내용을 섞어 고인을 애도하면서 칩거하는 동안 자신의 참담했던 심경도 함께 투사하는 작품이다.

표절 파문 이후 4년 만에 신작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재개에 나선 소설가 신경숙. 그는 “지난 4년 동안 제가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분들 가운데 여럿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앞에 망연자실했다”면서 “새삼스럽게 작은 호의, 내민 손, 내쳐진 것들의 사회적 의미,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기도 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내가 심은 나무의 굵은 가지들이 한밤 폭풍에 부러지고 찢겨나가고 두 발을 딛고 있던 모든 땅이 균열을 일으키며 흔들릴 때 절벽에 서서 저 아래 묶여 있는 배를 내려다본 적이 있다. 검푸른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조각배를.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그것은 마치 한걸음만 옮기면 내가 쉴 수 있다고 고통과 불면의 밤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작중 화자는 “그때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고 “ 칼이 놓여 있는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같이 나는 진정되지 않고 팔딱거리고 있었”다고 술회한다. 또한 “딛고 있던 나의 모든 바탕이 비난 속에 균열이 지고 흔들리는 것을 목도하느라” 그리고 “달의 주기처럼 차오르는 꺼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느라” 고향 친구에게 험한 말을 퍼부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차마 언어로 포착하지 않고 숨긴 삶의 순간들에 대해 너에게 얘기할 시간이 우리에게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 기회가 사라졌다고 애통해한다. 아마존의 어둠속에서 만났던 반딧불이 빛 덩어리를 죽은 친구가 1초라도 마주치기를 바라면서 끝내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서늘하다. ‘신은 늘 굶주려 있는 것 같아, 잡아먹힌다 해도 앞으로 나아갈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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