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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딸 과제 해주고 임금 뺏기고… 상아탑의 슬픈 자화상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입력 : 2019-05-23 07:00:00 수정 : 2020-08-05 1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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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회·학교 ‘경계인’ 대학원생 / ‘인분 교수 4년’ 여전한 갑·을 / 학위 볼모로 돈 요구하고 폭력·성폭행 / 40% “우울증·불안증세”… 일반인 6배 ↑ / 10명 중 8명 “연구 무관한 잡무 시달려” / 노조 만들어 목소리 낸다지만 / 지난해 서울 6개 대학 주축으로 출범 / 갑질 피해 상담 ‘대학원생119’ 서비스 / 원생이 교수 逆평가 ‘김박사넷’도 화제 / ‘브레인’ 정신건강 대학이 챙겨야 / “개인문제로 치부 안돼” 국제적 공감대 / “취업 보장한 도제식 관계 더는 안 돼…계약서 작성 학업·노동 경계 구분해야”

△‘딸 논문’에 대학원생 동원한 성균관대 교수 구속(5월15일)

 

△“석사 30만원·박사 50만원”…학위 볼모로 여전한 ‘갑질’(5월14일)

 

△“밖에 얘기하면 안 돼”…대학원생 인건비 부풀려 빼돌리게 한 교수(4월19일)

 

잊을 만하면 터진다. 세 사례는 지난 4월부터 약 두 달간 보도된 ‘교수 갑질’ 관련 기사 제목의 일부에 불과하다. 2015년 조교에게 폭행을 일삼고 인분까지 먹인 강남대 교수 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줬지만, 여전히 하루가 멀다고 대학원생 피해자가 발생한다. 대학 내 교수의 절대적인 권위, 학령인구 감소로 점점 좁아지는 등용문, 과거의 ‘도제식’ 관계에 갇힌 일부 교수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상아탑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거 봐라, 난 대학원생이지롱∼ 난 30살이야∼ 작년에 60만원 벌었다∼”

 

“바트! 대학원생 놀리지 말거라. 그냥 잘못된 선택을 한 것뿐이야.”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시즌16 20화에 나온 한 장면이다. 2005년 4월 미국에서 방영된 이 일화는 최근까지도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꾸준히 회자하고 있다. 등장 인물 바트 심슨이 뒤통수에 말총머리를 붙인 채 대학원생을 흉내 내자, 엄마 마지 심슨이 바트를 꾸짖으며 사회가 대학원생을 바라보는 풍자적 시선을 그대로 담아냈다.

 

학생과 직장인의 경계선에서 ‘잘못된 선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밖에서도 좀처럼 기댈 곳이 없었다. ‘인분 교수’ 사건이 4년 전, 심슨가족 일화가 14년 전이다. 수년간 변화도 없었던 셈이다.

◆대학원생들 “우울한 처지에 작별 고할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학원생들의 행동이다. 남에게 기대고 위로를 받기보단 직접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2월 서울 6개 대학 대학원생들이 조직한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처음으로 출범했다. 출범식에 앞서 배포된 홍보문에는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인권마저 침해당하던 대학원생의 처지에 작별을 고할 때”라며 “우리가 돈이 없지 노조가 없냐!”라고 적혔다. 대학원생노조는 지난 1월 직장 내 갑질을 제보받고 상담을 제공하는 ‘직장갑질 119’와 함께 ‘대학원생 119’ 서비스를 출범했다.

지난해 1월 개설된 교수 평가사이트 ‘김박사넷’도 권리찾기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대학원생들이 연구실 분위기, 교수 인품, 실질인건비, 논문지도력, 강의전달력 등 5개 항목으로 나눠 A+부터 F까지 점수를 매긴다. 익명으로 작성된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대학원생 스트레스 심각…대학이 챙겨야”

 

대학원생의 고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우울증, 불안증세를 겪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6배 이상 높다는 논문이 실렸다. 26개국 2279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응답자 40% 내외가 불안증세를 보였다. 논문 저자인 테레사 에번스 신경과학자는 “이제 대학이 나서서 대학원생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6∼17일 영국 브라이턴에서는 영국 고등교육기금위원회의 주최로 대학원생의 정신건강과 복지에 관한 ‘제1회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됐다. 박사과정 학생, 포스트 닥터(박사후과정 연구원)들의 정신건강을 단순히 학생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모여 국제학술회의로 발전했다. 네이처는 사설을 통해 “예비 과학자들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건 미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국내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보인다. 오는 6월5일 고려대 대학원생 총학생회는 대학원생의 정신건강권에 초점을 맞춘 토크콘서트를 개최한다. 행사에서는 지난해 4월 고려대 안암캠퍼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된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508명) 10명 중 8명 이상(86.1%)이 연구활동과 거리가 먼 잡무를 수행 중이라고 답했다. 지도교수와의 갈등 사례는 △과제 참여나 인원 부족 등을 이유로 학위 수여 미루기(41.8%) △학위를 미끼로 한 부당한 요구(21.4%) △교수가 관련된 업체나 일에 동원되거나 파견됨(19.8%) △폭력·욕설·인격모독·성폭행(17%) 순이었다.

◆교수·대학원생이 ‘상생’하는 방법

 

교수와 대학원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바람직한 ‘협력적 공생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극히 프로패셔널한 관계를 맺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스스로 지식의 생산자가 되는 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수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일부 교수의 일탈로 교수사회 전체가 경직되는 분위기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교수로서 당연히 해선 안 되는 행동규율을 정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재량권을 가져야 한다”며 “그것이 좁은 의미의 지식전달을 넘어선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수석지부장은 ‘제도 개선’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학교와 대학원생 간의 ‘계약’을 통해 학업과 노동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 역시 대학에 고용된 연구노동자임에도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에선 연구책임자 자격을 교수 이상으로 설정해 이들에게 전적인 재정적 권한을 부여한다”며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교수가 돈으로 대학원생을 좌지우지하는 부조리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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