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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지도부의 발언 논란 / ‘법치주의 부정’으로 갈등 조장 / 정치가, 객관적 균형 감각 필요 / 역사 잊은 정치는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역사인식 발언이 목불인견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 이른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특히 당 대표나 원내대표, 최고위원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당의 퇴행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고, 타당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탄핵에 대한 입장도 ‘O’도 ‘X’도 아닌 ‘△’라고 했다. 그는 비판이 일자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만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이라고 한발 뺐지만 발언은 철회하지 않았다.

김용출 정치부장

나경원 원내대표도 지난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고 발언, 논란을 자초했다. 그는 나중에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사실 왜곡” “친일파의 논리”라고 발끈한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5·18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순례 최고위원은 지난 전대에서 5·18 유공자를 “괴물 집단”이라고 불렀고, 이종명 의원도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해 정당성을 부정했다.

물론 한국당 지도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황 대표나 김 최고는 전대 승리를 위해 광장을 주도하는 ‘태극기부대’의 지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나 원내대표 역시 ‘원내 사령탑’으로서 선명한 대결구도를 통해 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된 역사 인식 발언들은 사실도 틀렸지만,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 가운데 하나인 법치주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 소추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이라는 헌법적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 광주민주화운동도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이미 수차례 결론이 났고 관련 입법도 이뤄졌다. 반민특위 역시 1948년 제헌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설치 운영되지 않았나. 즉 법원이 사실을 확인하고 헌법 또는 법률 절차에 따라 이뤄진 공적인 행위나 평가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인이나 공당의 역사 인식 발언은 ‘혹덩어리’ 정도가 아닌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점에서 전략적으로도 부적절했다. 즉 잘못된 역사 인식 발언으로 갈등을 조장했고, 더 나아가 미래로 나아갈 길조차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옹호하는 박 전 대통령조차 제18대 대선 기간 자신의 과거 역사 인식 발언을 공개 사과했다. 즉 그는 2012년 9월24일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지율과 표를 겨냥한 ‘정치적 사과’였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공개 입장 표명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지만, 공직 앞에선 공적인 역사 의식을 보여줘야 했던 거다.

정치가와 정당의 역사 인식 발언은 그런 것이다.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절대적으로 믿더라도, 객관적인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과 함께 균형 감각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균형 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하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치가는 역사 인식에서도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적절한 균형 감각을 가진 역사 의식은 때론 갈등 극복을 넘어 미래로 가는 길을 열기도 한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970년 12월, 유대인 학살 현장인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서 무릎을 꿇은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대표적이다. 그의 모습은 독일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응어리를 허물어지게 했고, 양국은 이후 화해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역사만 기억하는 정치도 미래가 없지만, 역사를 잊은 정치 또한 미래가 없다. 진보와 함께 보수도 살아야 한국 정치가 산다는 점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으로 무장해 다시 서는 한국당을 소망하는 건 너무 먼 얘기인가.

 

김용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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