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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음기로 일시 청각마비…브로커까지 낀 신종 ‘병역면탈’ [뉴스+]

입력 : 2019-03-19 18:48:57 수정 : 2019-03-19 2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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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국가대표 등 11명 적발/청력 장애 진단받아 병역 면제/ 브로커, 인터넷 동호회원 등에/ 최고 5000만원 받고 ‘비법 전수’/ 구독자 100만명 넘는 유튜버도/ 병무청 “7년간 면제 사례 조사”

지난 2015년 초 한 병원 주차장. 당시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A씨(31)는 자신의 차 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자전거 경음기와 ‘에어혼’(Air horn)을 꺼냈다. 에어혼은 일종의 나팔로 자동차 경적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도구다. 100㏈(데시벨) 이상의 큰 소리를 낸다. 주로 배 등에서 경적 대용으로 사용하거나,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도구로 쓰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A씨는 이윽고 이 나팔을 귀에 대고 20분 간격으로 2회씩 작동시켰다. 청각을 마비시키기 위해서다. 귀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A씨는 검사소로 올라가 몇 차례 검사를 받은 뒤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장애인으로 등록된 A씨는 병역을 면제받게 됐다.

 

A씨는 이 같은 행위를 저지르기 수개월 전 인터넷 수입차 동호회에서 만난 이모(32·브로커)씨에게서 이러한 수법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씨도 이렇게 해서 군대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군 입대로 선수생활이 단절되는 게 두려웠던 A씨는 이씨 요구대로 1500만원을 송금한 뒤 에어혼을 비롯한 도구와 방법을 전달받았다. 이런 수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은 이 둘뿐이 아니었다.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은 청력장애를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은 전직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A씨 등 8명과 이러한 병역면탈을 도운 공범 3명 등 11명을 적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병원 주차장 승용차 안에서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나팔 등을 귀에 대고 일정 시간 큰 소리 내 청각을 마비시켰다. 이후 장애진단서로 장애인으로 등록한 뒤 병역면제를 받은 혐의(병역법 위반)를 받고 있다.

 

브로커인 이씨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이나 지인 등에게 병역면제 수법을 알려주는 대가로 1000만원에서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어린 시절 자전거 경음기를 가지고 놀다가 귀에 대고 소리를 울리면 청각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경험을 한 뒤 이러한 수법을 고안했다고 병무청에 진술했다. 이씨 본인도 지난 2011년 같은 수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병무청 관계자는 “56㏈의 소리를 못 듣는 정도면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고, 공장 소음 수준인 71㏈ 이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완전히 면제된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19일 자전거 경음기 등을 활용해 일시적으로 청각을 마비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받아 병역 면제를 받은 전직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등 8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병원주차장 승용차 안에서 자전거 경음기 또는 응원용 나팔 등을 귀에 대고 일정 시간 큰 소리에 내 청각을 마비 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아 장애인으로 등록 후 병역면제를 받았다. 19일 오전 서울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김태화 병무청 차장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 BJ(인터넷방송 진행자) B씨(25)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지난해 이씨의 선배(33)로부터 이러한 수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A씨에게 5000만원을 송금한 뒤 수법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이를 수사하던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에게 적발돼 병역면제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B씨는 현재에도 게임 관련 인터넷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선배 외에 이씨의 동생 2명도 이번 사건에 중간책으로 가담했다. 이들은 자신의 친구나 지인들을 이씨와 연결해주는 대가로 수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청력장애를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은 A씨와 병역면탈을 시도한 B씨 등 나머지 7명도 재판을 받고 있거나 조만간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라고 병무청은 밝혔다. 이들이 유죄가 확정되면 형사처벌과 함께 다시 병역판정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른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병무청은 이러한 수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최근 7년간 청각장애 병역면제자의 과거력과 병원치료 이력, 보청기 구입 여부 등을 살피며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일시적 청력마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검사대상자가 검사소에 오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검사하는 등 청력검사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다. 또 병역면탈 외에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이러한 수법을 쓴 사람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관련 내용을 보건복지부 등에 전달할 방침이다.

 

김태화 병무청 차장은 “2012년 특별사법경찰제도가 도입된 이후 브로커가 개입한 최초의 병역면탈 사례”라며 “2017년 12월 제보를 받은 뒤 병무청 자체 디지털포렌식 장비를 활용해 브로커와 피의자 간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병역면탈 범죄를 대거 적발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어 “철저한 수사로 병역면탈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정의로운 병역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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