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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 찾아] 탱자나무

신채호 생가 옆 꼿꼿한 탱자나무/ 中 감옥서 순국한 선생 성품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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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15 22:16:57      수정 : 2019-03-18 16:26:54

가랑비 내리는 이른 봄길을 신채호의 자취를 찾아 산내 쪽으로 향한다. 대전이 규모가 커지면서 옛날에는 대덕군이던 곳이 대덕구가 되자 신채호의 생가가 있는 산내면 도리미 마을이 대전에 편입됐다. ‘조선상고사’를 읽어 신채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이곳에 한 번 가보고자 했다.

나는 대전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크면서는 신채호를 청주 사람으로만 알았다. 여덟 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 충북 청원에 가 성장했고, 단재기념관도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충북 쪽은 일찍부터 역사와 문학에 깨어 기억해야 할 것을 기념하는 전통이 살아 있다. 중국에 여행 갈 일이 있어 뤼순(旅順) 감옥으로 알려진 곳을 견학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안중근과 함께 신채호의 사진을 만났다. 이 감옥에서 두 분 다 장한 생애를 마친 것이다. 한 분은 여기서 사형 집행을 당했고, 다른 한 분은 순국하시고 말았다. 위층에서 아래층까지 다 감시할 수 있는 팬옵티콘식의 감시대에 서서 두 분 선혈의 뜨거운 삶을 추억했었다. 어찌하여 이분들은 나라를 떠나 먼 곳을 떠돌았으며, 중국 땅에서 일본 관헌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던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행정구역만 대전일 뿐, 시외로 나가는 외길은 고즈넉하다. 산을 따라 내가 흐르고 논조차 보인다. 아름다우면서 쓸쓸한 길 끝에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안내표지판까지 서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자 바로 신채호의 생가터다. 먼저 단아한 홍보관 한옥건물이 서 있는데 내부는 아직 자료가 많지 않고, 생애를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았을 뿐이다. 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 신숙주의 18대손으로 출생해 1936년 2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를 따라가 서당에서 한문수학을 하며 성장했고, 19세에 성균관 유생이 돼 독립협회에 가담하고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논객으로 활약한다.

홍보관을 나와 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 복원해 놓은 생가로 향한다. 비는 내리는 데 우산은 쓰고 싶지 않다. 나무 가운데 탱자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댁 울타리가 탱자나무, 하지만 해마다 전지를 해 큰 나무는 보지 못했었다. 나는 키 큰 탱자나무 가지 딱딱한 가시를 만져본다. 어쩐지 이 나무는 신채호의 꼿꼿한 성품을 닮은 것만 같다. 안중근이 1879년생, 한용운도 1879년생, 안창호는 1878년생, 그들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서세동점’의 대기운 속에서 조국이 바람 앞 등불 같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세상에 나왔다. 의식이 또렷한 사람이라면 시국에 눈뜨지 않을 수 없는 시대였다.

“인간에게는 싸움뿐이니라.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나니 신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신채호는 1916년에 독특한 단편소설 ‘꿈하늘’을 썼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문구다. 인간 세상은 싸움뿐이요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음뿐이라는 이 비정한 사상은 그가 맞닥뜨린 세상에 대한 그의 인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놈’이었다. “한놈은 대개 처음 이 누리에 내려올 때에 정과 한의 뭉텅이를 가지고 온 놈이라. 나면 갈 곳이 없으며, 들면 잘 곳이 없고, 울면 믿을 만한 이가 없으며, 굴면 사랑할 만한 이가 없어 한놈으로 와, 한놈으로 가는 한놈이라.” 이 ‘한놈’은, 바로 신채호 자신이었다. ‘사천년 제일대 위인 을지문덕’을 쓴 작가 신채호 말이다. ‘꿈하늘’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놈’은 말한다. “다른 것 아니라 대개 정이 많고 고통이 깊은 사람이라야 우리의 놀음을 보고 깨닫는 바 있으리니, 네가 인간 삼십여 년에 눈물을 몇 줄이나 흘렸느냐? …”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본 이 비정한 역사사상가가 사실은 ‘무정’한 세상을 눈물로 구원하고자 한 작가였던 것이다. 신채호가 세상에 나온 곳 그 길가에 선 가시 많은 탱자나무 한 그루, 그것은 속으로 정 많은 눈물 흘리는 신채호 바로 그였다. 그곳을 돌아 나오는 길, 나는 먼 이역에서 세상 떠난 선생을 위한 눈물 한 줄기를 가슴으로 흘렸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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