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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작된 '그 사건'… 피해자 정말 1명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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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16 10:39:20 수정 : 2019-03-16 11: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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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과학수사부 내부 소식지에 실린 '그 사건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 / 법의학 전문가가 직접 겪은 독극물 중독, 부검 등 생생한 비화에 '눈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7년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교도소에 수감 중인 A(여)씨가 있다. 수사와 재판 당시 30대였던 그는 10년 넘게 옥살이를 해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A씨의 혐의는 지난 2003년 친딸 앞으로 보험을 든 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독극물로 딸을 살해했다는 것. 법원 판결문상 피해자는 딸 1명이다. 그런데 A씨한테 살해를 당한 피해자가 실은 2명 더 있을 수 있다는 의문점이 검찰 공소장에 적시돼 기록으로 남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눈길을 끈다.

 

◆보험금 노려 친딸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

 

15일 검찰·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03년 10월 경남지역의 한 실내수영장에서 수영 중이던 둘째 딸(당시 9살)을 탈의실로 부른 뒤 독극물이 든 음식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음식을 먹은 딸이 탈의실에서 풀로 돌아가 수영을 하는 도중 갑자기 숨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익사’로 처리될 뻔했다.

 

그런데 사망 경위에 의문을 품은 검사가 부검을 지시했더니 익사가 아니고 ‘독극물 중독’이 직접 사인으로 드러나며 수사가 개시됐다. 검찰은 어머니 A씨가 딸의 사망 하루 전 딸 명의로 보험에 가입한 점에 주목하고 A씨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다.

 

A씨는 수사와 재판 내내 “보험금 때문에 배 아파 낳은 딸자식을 죽일 어미가 어디 있느냐”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반면 검찰은 A씨를 진범으로 확신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2006년 10월 창원지법 1심 재판부는 A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이 구형한 사형보다는 한 단계 아래인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듬해인 2007년 1월 항소심(부산고법)과 같은해 6월 상고심(대법원 2부)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무기징역이 최종 확정됐다.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교수의 글 ‘그 사건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가 실린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내부 소식지 ‘법과 과학’ 표지. 표지 속 건물은 대검에 있는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다.

◆2001년 남편 급사… 보험금 3700만원 수령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 된 것은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는 2명의 사망 경위가 공소장에 적힌 점이었다고 한다. 2001년 사망한 A씨 남편 B씨, 그리고 2002년에 사망한 A씨 친구 C(여)씨가 주인공이다.

 

검찰에 따르면 비교적 건강했던 B씨는 2001년 12월 갑자기 쓰러졌다. 아내 A씨와 함께 이웃집의 김장을 돕고 갓 담근 김치와 생굴을 맛있게 먹은 뒤 귀가해 A씨가 타준 커피까지 마신 직후의 일이었다. 숨을 못 쉬겠다며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팔과 다리가 뒤틀린 B씨는 119 구급대에 의해 근처 대학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딱히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의사는 A씨한테 “남편이 쓰러지기 직전에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A씨는 커피는 빼고 갓 담근 김치와 생굴 얘기만 들려줬다.

 

의사는 생굴에 주목했다. 굴 같은 패류 속에 든 독성분이 B씨 체내에서 과민성 반응 쇼크를 일으키고 그것이 심폐정지로 이어졌다고 추정했다. 그 결과 직접 사인을 ‘심폐정지’라고 기재한 사망진단서가 발급됐다. B씨 시신은 통상의 장례 절차를 밟았다.

 

이후 A씨는 1996년과 1999년, 그리고 B씨 사망 몇 달 전에 가입한 4개의 보험에서 총 3700만원의 보험금을 바로 수령했다.

 

◆친구 몰래 가입한 보험금 5000만원도 노려

 

이듬해인 2002년 8월 이번에는 A씨와 가까운 곳에 살던 친구 C(여)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C씨 아들 생일을 맞아 산 케이크를 A씨와 나눠먹은 직후 C씨의 배가 불러오더니 얼굴이 파랗게 변하고 숨까지 가빠졌다. C씨 남편의 신고로 출동한 119 구급대가 C씨를 근처 대학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응급치료에도 불구하고 C씨는 이튿날 숨졌다.

 

의사는 사망진단서에 C씨 사인을 ‘심장의 혈관이 막힌 급성심근경색의 증’이라고 기재했다. 그래서 C씨 시신도 통상의 장례 절차를 밟았다. 다만 병원 후송 당시 수련의가 적은 의무기록지 한 귀퉁이에 ‘DI(약물중독)가 의심된다’는 취지의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장례 후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C씨가 사망 직전 생명보험에 가입했는데 보험금 5000만원의 수령자가 C씨 남편이나 그 가족이 아니고 친구 A씨로 지정된 것이었다.

 

C씨 남편의 이의 제기로 보험사 측이 조사를 했더니 A씨가 C씨인 척 가장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내가 친구 부탁으로 가입했는데, 절차를 잘 몰라 벌어진 단순 실수”라고 둘러댔다.

 

결국 A씨에게 보험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수상한 마음이 든 C씨 남편은 수사기관에 진정서를 냈지만 ‘증거 부족’을 이유로 내사종결 처분이 내려졌다.

 

박시환 전 대법관. 그는 2007년 당시 친딸 살해범 A씨 사건 주심 대법관으로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기소 못해

 

A씨가 친딸을 살해한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은 A씨 주변을 조사하던 중 남편 B씨와 친구 C씨의 석연치 않은 사망 정황을 포착하고 그 배후에도 보험금을 노린 A씨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검찰은 B씨와 C씨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후송됐을 때부터 사망시까지의 모든 의무기록, 그리고 사망진단서 등을 입수해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로 보냈다. 법의학교실은 “독극물 중독이 의심된다”며 “B씨와 C씨의 시신을 부검하라”고 검찰에 권고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장례 절차가 끝나고 한참 지난 뒤였다.

 

고심 끝에 검찰은 A씨를 친딸 살해 혐의로만 기소하며 공소장에 B씨와 C씨의 사인도 불분명하다는 점을 적시했다. A씨 측은 반발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사건과 관련없는 A씨 남편과 친구 사망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공소장에 기재한 것은 법관으로 하여금 예단을 생기게 하는 것으로 예단 금지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대법원 2부의 이 사건 주심 대법관은 박시환 전 대법관이었다. 그는 판결문에서 “살인 등의 경우 범죄의 직접적 동기 또는 공소사실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동기를 공소사실에 기재할 수 있다”며 “공소장의 범행 동기와 경위가 다소 길고 장황하게 기재됐다고 해서 예단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의학 전문가 "시신 부검 제대로 했다면…"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최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매월 펴내는 내부 소식지 ‘법과 과학’에 실은 글에서 이 사건의 전말을 소개했다. 제목은 ‘그 사건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이다.

 

“검찰은 수사 중 A씨의 남편 B씨와 친구 C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의무기록과 자료를 서울대 법의학교실에 보냈다. 의무기록을 모두 살펴본 교수는 매우 놀랐다. 독극물 중독에서 보일 수 있는 모든 기록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급히 남편 B씨와 친구 C씨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권고하였다. 검찰은 이 모든 사망이 A씨의 범죄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검사할 시신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사건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 중에서)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표지.

최근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21세기북스)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유 교수는 지난 20년간 시신 1500여구의 부검을 담당한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을 겸하고 있으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방송 프로그램들의 법의학 관련 자문도 맡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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