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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퇴계 왈 “사정(邪正)이 한데 섞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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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0 22:05:25 수정 : 2017-11-20 22: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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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의 늪에 빠진 조선 / 정치 보복이 국운 갈랐다 / 반복되는 ‘적폐청산’ 정치 / 큰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라 학봉 김성일.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통신사로 간 인물이다. “병화 기미를 보지 못했다”는 말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패덕한 인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왜란에 대비해 진주성을 쌓고, 파직된 뒤에는 의병을 모으고, 진주성 김시민을 도왔다. 줄행랑을 친 숱한 용장(?將)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다.

그가 퇴계에 관해 남긴 글.

강호원 논설위원
“선생께서는 벼슬함은 도를 행하기 위함이요, 녹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다.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나기를 하나같이 의(義)를 따랐기에 40년 동안 네 임금을 모시고, 물러난 것만 일곱 번이다. … 모든 학자가 높여 이르기를 ‘퇴계선생’이라고 했다.”

선생은 아무에게나 붙이는 호칭이 아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당대 선비가 모두 선생이라고 불렀을까. 함양(涵養)·체찰(體察)·신독(愼獨)·공경(恭敬)…. 궁행실천으로 마음공부를 한 퇴계가 중시한 말이다. 퇴계는 왜 고향 예안으로 내려갔을까. 김성일의 말 그대로다. 권모(權謀)가 춤추는 한양의 세태는 의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모두 알았다. “퇴계선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랬기에 왕위에 오른 선조는 5개월 동안 7차례나 교지를 내려 불러올렸다. 낡은 옷을 입은 68세의 노신은 임금을 가르치고, 정사를 돌봤다. ‘성학십도(聖學十圖)’는 그때 어린 임금을 가르치기 위해 쓴 글이다. 왕의 마음이 바르면 왕도가 실현되리라 믿었을까.

선조 2년, 1569년 3월 4일 밤 퇴계는 선조와 마주 앉아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남북에는 다투려는 나라가 있고, 백성은 쪼들리며, 나라 곳간은 비어 있사옵니다. 사변이라도 닥치는 날엔 토담처럼 무너지고 기왓장처럼 흩어질 것이옵니다. … 폐조(廢朝·왕을 몰아내는 시대) 때의 무오·갑자사화는 말할 것도 없고, 중종 때에는 기묘사화로 현인·군자가 모두 큰 죄를 입었으니, 이로부터 사정(邪正·잘못과 올바름)이 한데 섞여 간악한 무리가 때를 만나 사사로운 원한을 갚으니 ‘기묘의 여습’이라 하옵니다.”

퇴락한 정치를 걱정한 퇴계. 그가 떠난 지 23년 뒤 참혹한 왜란이 터졌다. 조선은 토담처럼 무너지고 백성은 기왓장처럼 흩어졌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 그 글도 퇴계의 생각을 잇는다. 스승을 태산북두처럼 받든 김성일. 동서 당쟁에 휩쓸린 제자는 나랏일을 그르친 ‘세 치 혀’를 자책하며 전장에 몸을 던진 걸까.

퇴계 이황과 김성일. 파란의 조선 운명은 두 사람의 언행에서 드러난다.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다투려는 나라는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패권을 앞세운 미·중·일, 핵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북한. 사드 하나 마음대로 들이질 못한다. 경제? 그나마 낫다. 하지만 아우성이 가득하다. 일자리가 모자라고, 노조와 이익집단은 이익을 다투니. 나라 곳간은 괜찮을까. 복지 정책에 쌓이는 빚.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대로 가면 2060년에는 국가채무가 1경5499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버틸 수나 있을까.

그것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전·전전 정부를 콕 집어 이루어지는 사정. “적폐청산”이라고 한다. 상대는 잘못을 인정할까. “정치보복”이라고 외친다. 청산하는 쪽이 도덕적으로 무장했다면 모를까,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고,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당한 인사의 면면을 놓고 보면 ‘도덕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쏟아지는 ‘내로남불’ 비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 청산 대상이 된 과거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도(權道)의 수레바퀴 소리만 요란한 것이 아닐까.

권력 지형이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대판 ‘기묘의 여습’은 반복될 수 있다.

상대의 씨를 말린 조선의 당쟁. 나라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위태로운 나라 안보와 경제를 앞에 두고도 이어지는 적폐청산 싸움과 정쟁. 퇴계가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사정이 한데 섞여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다”고, “나라는 토담처럼 무너지고 기왓장처럼 흩어질 것”이라고.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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