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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권력도 고이면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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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6 23:23:11 수정 : 2017-11-16 23: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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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끼리 내부 소통만 하면 /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질 우려 / 나와 다른 외부환경과 호환해야 /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 가능 공기도 썩는다. 아마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지표면의 공기는 낮에 태양의 열기를 받아 뜨거워진다. 그러면 밀도가 옅어져 위로 올라가고 위쪽의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온다. 가벼운 것은 위로, 무거운 것은 아래로 향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 현상이다. 이런 순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공기는 정체돼 고인 물처럼 오염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상하의 교감이 끊어져 막힌 상태를 주역에선 천지비(天地否)라고 부른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괘이다. 하늘과 땅이 각기 제 자리에 놓인 상태가 왜 단절과 불통이 되는 걸까? 이러한 의문이 들 것이다. 여기에 주역의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 하늘의 양기가 위로 오르려고만 하고 땅의 음기가 아래로 내려가기만 한다면 둘의 교류는 성립될 수 없다. 국가의 권력도 다르지 않다. 권력을 잡은 집권층이 자기 의견만 중시하고 반대 진영을 배척하면 양자의 교감은 끊어질 것이다. 아무리 지향하는 바가 옳고 거창할지라도 흐름이 막히면 썩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세상에는 두 개의 소통이 있다. 외부와의 소통과 조직 내부의 소통이다. 박근혜정부는 가장 기본적인 내부 소통조차 원활하지 못했다. 불통의 폐해를 절감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보다 소통에 적극적이다. 취임 후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의무”라고 역설했을 정도다. 그런 ‘소통 정부’에서 한쪽에선 소통, 다른 쪽에선 불통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소통이 내부에서만 이뤄지고 외부 반대자와는 활발하지 못한 까닭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소통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에서 시작된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적폐로 몰고 문자폭탄을 터뜨리면 사고의 환류는 일어날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보수 진영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국정과제 1호가 적폐 청산이다. 이런 적대감으로는 타인과 교감이나 소통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진정한 소통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호환이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임금이 자국을 방문한 제나라 재상 안영에게 물었다. “옛말에 세 사람 말만 잘 들어도 미혹되지 않는다고 했지요. 지금 나는 세 사람 정도가 아니라 나라 안의 모든 신하와 상의해 국사를 처리합니다. 그런데도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어찌된 영문이오?” 안영이 대답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르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이 그르지 않을 것이므로 미혹에 빠질 위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노나라 신하는 몇 백, 몇 천이 되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실권자인 계씨에게 이득이 되는 말만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는 많지만 한 사람이 말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역시 명재상 안영이 소통의 폐부를 찔렀다. 소통은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포용하느냐 여부에 달렸다. 자기들끼리의 소통은 자칫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안쪽의 박수소리만 듣고 바깥의 비판에 귀를 닫으면 정책 결정이 잘못되더라도 수정할 방법이 없다. 조직 안팎에 제동장치가 없으므로 정책은 위험한 과속질주를 하게 된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사제를 선출하는 중요 결정을 내릴 때 후보자의 약점을 들추며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악마의 대변인’을 둔 것은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유대인들은 전원일치 결정이 나오면 무효로 처리한다. 만장일치를 권력의 강압이나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비겁한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점차 더 나은 단계로 진화한다. 그 전제조건은 자기와 다른 외부 자연과의 끊임없는 소통이다. 동종의 교류만 반복하면 종의 다양성은 파괴된다. 외부환경과의 적응에 실패해 결국 공룡처럼 소멸의 운명을 맞는다.

정권도 이런 자연법칙에 예외가 될 순 없다. 당장의 높은 지지율에 취해선 안 된다. 무결점 정권의 오만에 빠지면 자신을 바꿀 기회가 사라진다. 햇빛을 받아 공기의 순환이 일어나듯 서로 다른 생각의 호환이 이뤄져야 정권의 진화가 가능해진다. 명심하라. 권력도 고이면 썩는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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