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 기업은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만 그랬을까. 수출에 목맨 나라치고 그렇지 않은 곳은 드물었다. 물건값을 떨이하듯 파니, 주변국 기업은 팔 길이 막힌다. 결과는? 주변국은 멍들었다.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모자란 외환을 채우기 위해 빚을 내야 했다. 국가신용도는 떨어지고, 부도 위험은 커진다.
맞물려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렸다. 1994년 초 연 3.0%이던 미 금리는 한 해 동안 배나 뛰었다. 이듬해 초 6.0%. 금융자금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틈을 노려 회심의 한 수를 던진 곳은 일본이다. 엔저(低) 불을 지폈다. 저성장 재앙의 씨앗인 1985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高)를 청산하고, 위안화에 맞서기 위한 조치다. 1995년 엔화 가치 하락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그때의 일은 단순한 경제 현상일까. 아니다. 그것은 ‘경제전쟁’이다.
원화는 어찌 되었을까.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왜?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마당에 원화 가치를 함부로 떨어뜨릴 수 없다.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테니. 1990년대 중반의 부도사태, 경상수지 적자, 늘어난 나랏빚. 모두가 그에 닿는다. 우리 기업은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호랑이 등에라도 업혀 살아남아야 했으니. 톈진, 칭다오, 선양…. 모두 그때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 자본이 일으킨 곳이다. 우리 경제는? 시퍼렇게 멍들었다. 산업공동화까지 걱정하지 않았던가. 김영삼정부에서 외친 고비용·저효율 구조 개혁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둑은 결국 터졌다. 1997년 11월 국가부도사태는 그 결말이다.
20년 넘는 과거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지금 상황이 그때와 너무도 빼닮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위기 2막’의 징후는 무엇일까. 미국이 제로금리시대를 끝냈다. 올해 두 번 금리를 올린 미국은 12월 또 올리겠다고 한다. 왜? 매파가 득세해서? 아니다. 미국 경제가 불붙기 시작한 탓이다. 성장률은 4%에 가깝다. 과열 걱정까지 나온다. 사상 최고치를 치닫는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는 그 결과다.
강호원 논설위원 |
경제전쟁을 알리는 적신호는 켜진 지 오래다. 바람이 거세면 풀은 반드시 쓰러지는(草上之風必偃) 법이다.
외생변수만 문제일까. 나라 안 사정은 더 복잡하다. 세계적인 양적완화에 대응하지 못한 우리. 지금의 저성장은 그 결과 아닐까. 더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반(反)기업정책. 외환위기 앞에 선 김영삼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경제부처 수장치고 외풍의 위험을 말하는, 규제·노동 개혁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환심을 사는 복지 외침만 요란하다. 세금이 모자라면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떠넘긴다. 우는 아이의 뺨을 때리는 것인가.
기업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세계경기가 풀리는데도 652조원으로 오히려 불어난 30대 기업 사내유보금. 무슨 뜻일까.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반도체 슈퍼 호황은 ‘신의 선물’이다. 선물에 취해 내일의 위험을 보지 못하면 선물은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만다. 그때 이르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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