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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 바엔 번듯한 옥상옥으로
그래야 말발 서고 일 제대로 해
옹색한 옥탑방으로 지었다가는
없느니만 못한 종이호랑이 돼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마련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권고안이 역풍을 맞자 법무부와 검찰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개혁위안보다 대폭 후퇴해 공수처의 힘을 잔뜩 빼 쭈그렁 밤송이로 만드는 셀프개혁안을 내놓았다. 비판 여론을 수렴한답시고 대안을 만든 것인데, 그 좋은 머리를 굴려도 너무 굴렸다. 검찰개혁의 칼날을 피해 가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검사들에게 검찰개혁을 맡기면 안 된다는 거다.

공수처 설치는 그 자체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검찰이 있고 상설특검, 특별감찰관까지 운영하는데도 굳이 또다른 수사기관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옥상옥이다. 부처가 있는데도 각종 위원회를 남발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를 알면서도 공수처 설치를 대단한 개혁과제인 양 지난 20년간 떠받든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검찰을 바꿔 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바람이 불기도 전에 미리 눕고 내부 비리에 눈감는 정치검찰 말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기왕에 공수처를 만들기로 했으면 어중간한 옥상옥 말고 조직과 기능을 제대로 갖춘 번듯한 옥상옥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 그래야 말발이 서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안은 공수처를 마지못해 꾸며놓은 듯한 옹색한 옥탑방 몰골로 만들었다. 이래서는 “일을 한다고 모이긴 모였는데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소리만 듣기 십상이다. 이런 공수처는 없느니만 못하다. 그럴 꿍꿍이였으면 처음부터 야단법석 떨어가며 개혁위에 공수처안을 만들어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개혁위 권고안에서 논란이 된 것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규모, 권한이다. 공수처장 임명절차에서 권고안은 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국회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도록 했으나 법무부안은 국회의장이 각 원내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추천위가 추천한 2명 중 1명을 선출하도록 했다.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적극 검토할 만하다.

‘슈퍼 공수처’라는 지적을 받은 122명의 규모(처장, 차장에 검사 50명, 수사관 70명)가 지나치게 많다면 약간만 조정하면 된다. 법무부안처럼 반토막을 낼 정도는 아니다. 이 인력으로 수사와 공소유지, 항소, 상고, 기본적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권고안은 타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수사에 착수하면 지체 없이 공수처에 통지토록 했으나 법무부안은 통지의무를 없앴다. 수사기관이 수사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공수처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문제가 있다.

공수처를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시키는 법무부 생각에 여당이 동조한 것이 걱정이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반대하는 보수 야당들 눈치보느라 절충안을 짜낸 것 같은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본질이 아니라 곁가지다. 그마저도 반쪽짜리 견제장치에 그친다면 검찰로 하여금 개혁 생색만 내게 해주고 검찰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그런 공수처는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반대하는 야당을 상대로 힘을 뺄 필요도 없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검찰 손에 맡겨져 있다. 사면초가에 몰린 검찰에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총력 수사로 능숙한 일처리 솜씨를 보여주면 뼈를 깎는 고통과 반성 없이도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춘 쾌도난마식 해결로 자신의 권력을 확대재생산해 오지 않았던가. 적폐청산 수사가 가속화되면서 검찰개혁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의 모든 후보가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검찰개혁을 공약했으나 국회에서의 입법화 여부는 안갯속이다.

검찰개혁의 요체는 수사권·기소권·공소유지권 등의 독점체제를 깨 검찰의 정치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공수처 문제가 검찰개혁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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