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스튜디오 폐업에 추억 잃은 엄마들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6-25 22:04:09 수정 : 2017-06-25 23:47:1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나는 어릴적 앨범을 꺼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전에는 내가 얼마나 오동통하고 못났었는가 확인하는 게 재미있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또 다르게 느껴진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오래도록 기억하려 셔터를 눌렀을 젊은 우리엄마가 그려진다. 엄마는 ‘어떻게 나왔을까’ 두근두근하며 사진을 인화했을 게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앨범에 꽂으셨겠지. 딸이 서른 넘어서까지 그 앨범을 닳도록 보고 있으니 꽤 보람을 느끼실 거라 생각한다.

요즘 엄마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진을 저장한다. 해상도가 높고 저장 용량이 넉넉한 휴대전화 카메라가 있어 부담 없이 찍고 보고 싶을 때 본다. 터치 몇 번이면 책으로 된 앨범을 제작해 소장할 수도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성장앨범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50일, 100일, 200일, 첫돌, 두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화보로 남긴다.

대부분 엄마들이 적어도 돌 때까지는 스튜디오를 찾는다. 필요를 못 느꼈던 엄마들도 업체 이벤트로 무료 촬영을 했다가 모델처럼 깜찍하게 나온 아기 사진을 보면 덜컥 계약하고 만다. 보통 수백만원이다. “돈이 썩어나냐”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돈이 썩어나서 하는 엄마는 없다. 가격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기의 예쁜 모습을 기왕이면 더 예쁘게 남기고 싶어 고심 끝에 하는 선택이다. 

김희원 문화부 기자
얼마 전 한 베이비 스튜디오가 부도가 나면서 400명 가까운 엄마들이 피해를 봤다고 한다. 20년이나 된 강남의 유명 업체였다. 피해자들은 계약금도, 사진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스튜디오 폐업으로 인한 피해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3년 전 첫째 때에 이어 이번 둘째까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 문제를 인지하게 된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사진)원본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기 고생시켜 가며 예쁜 사진 남기겠다고 들인 노력과 추억을 빼앗겼다는 데 분노한다.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면서 취미로든 업으로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스튜디오가 우후죽순 생기는 동시에 성장앨범을 ‘셀프’로 만드는 사람도 많아졌다. 업체가 경쟁력을 갖추려 사업을 확장해도 충분한 고객을 유치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스튜디오가 있고 하루에도 몇 곳씩 문을 닫는다”며 “갑자기 지나치게 가격을 할인하는 곳은 문 닫기 일보직전이라는 뜻이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를 키운 것은 선불 완납 시스템이다. 대부분 업체들이 할인이나 다른 상품을 끼워 주는 방식으로 계약시 수백만원을 한꺼번에 내도록 요구한다. 처음 스튜디오 폐업 문제가 터지면서 지적됐던 얘기이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스튜디오는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려 하지만, 고객들은 큰 부담과 불안을 안고 가야 한다. 추억을 사기당한 엄마들에게 때늦은 처벌과 보상은 의미가 없다. 최소한 할부나 후불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호와 업계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피해에 대한 불안감으로 성장앨범을 포기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 결국 위험은 업계 전체로 돌아간다.

김희원 문화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