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 전개는 트럼프가 자초한 면이 강하다. 얼마 전 워싱턴에서 만난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는 “트럼프가 어떤 지도자인지, 아니 어떤 성향과 인격을 지녔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했다. 전략적으로 움직인 것 같다가도, 상황에 맞게 발언을 뒤집는 사람으로도 보인다고 개탄했다. 그런 트럼프가 부여잡고 있는 게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이다. 트럼프 스스로 지지자들을 비롯해 미국인에게 그리 인식되길 원하고 있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
트럼프가 그나마 환대한 외국 정상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였다. 지난 2월 기대에 부응하는 선물을 갖고 미국을 방문한 아베를 향해 트럼프는 연신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베는 트럼프와 정상회담에서 70억달러(약 8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로서는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국민에게 공언한 마당에 일자리 70만개 창출을 돕겠다는 아베의 발언이 한없이 달가웠을 것이다. 실익을 위해서는 애써 자존심을 숙이는 일본의 외교관들은 4월 초엔 이방카와 그녀의 가족을 자국 축제 현장에 불러들여 환심을 사기도 했다. 맏딸 이방카 등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트럼프의 속내를 고려한 행보였을 수 있다.
며칠 뒤면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찾는다. 문 대통령이 취임 2개월도 안 돼 조급하게 워싱턴을 찾을 정도로 양국 사이엔 현안이 산적해 있다. 대북정책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문제 등 굵직한 안보와 경제 문제가 모두 의제에 포함될 개연성이 있다. 양국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크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방문을 단신으로 취급하다시피 했던 미 언론이 연일 문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낼 정도이다.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접근법은 어때야 할까. 최근 기자와 만난 신현웅 미국 공화당 아·태 한국위원회 전국의장은 “트럼프에게 정치는 게임이 아니고 협상”이라며 “그래도 그는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새겨들을 메시지다. 한국의 존재가 미국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진실하게 이야기하면서 트럼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를 보여 주자는 제안이다. 아베의 방법도 아니고, 마크롱이나 메르켈의 접근법도 아닌 제3의 방식을 찾자는 이야기다. 어쩌면 높은 국민적 지지 속에 국가적 과제인 안보와 경제 문제를 다루는 문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로 지금 당장의 현실을 고민해야 하는 트럼프보다 한결 여유롭게 대화에 임할 수도 있다. 출마 선언 이후 2년 동안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여잡고 있는 트럼프가 약간의 자존심을 챙기고 문 대통령의 발언에 수긍한다면 우리로서는 금상첨화이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