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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인사청문회가 지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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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5 21:57:25 수정 : 2017-06-05 21: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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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 앞세워 멀쩡한 사람
치도곤으로 초주검 만들어
고위공직자 무덤 삼는 것
이제 바꿀 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을 제시한 것은 의욕과잉이었다. 그런 기준을 마음속에만 품었더라면 보다 수월하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불필요한 검증 논란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예 대못을 꽝꽝 박아 버렸으니 제 발등을 찍은 결과가 됐다. 후보자들의 허물에 대해 “심각성, 의도성, 반복성, 시점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불문곡직 ‘불가’를 고집하는 야당이 그악스럽기는 하지만 원칙을 따지면 틀린 것도 아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엎질러진 물 주워 담겠다고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르듯 관련 사실을 들여다보면 성격이 아주 다르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약속을 어긴 쪽에서 하실 말씀은 아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픈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른 이 총리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으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재벌 저격수’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뒤로 비판과 공격을 업으로 삼았을 그가 난데없는 공직의 길로 들어서는 관문에서 속옷까지 모조리 벗겨지면서 느낀 심정은 시민운동 20년간 가졌다는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긴장감’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소감이 “오늘 하루의 청문회는 제 평생의 큰 교훈이었다”였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 밑으로 꾹꾹 눌러 놓았을 것이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탈탈 털리는 처참한 처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김기홍 논설위원
‘용감하게’ 인사청문대에 설 정도면 나름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는 뜻이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래 나랏님의 부름을 받고도 뒤가 켕겨 감히 나서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다. 박근혜정부의 정홍원 국무총리는 청문회를 앞두고 “어린 시절 작은 잘못까지도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그런 ‘자기 검열’ 과정을 거치고도 막상 청문회장에 나오면 뭇매를 맞기 일쑤다. 독야청청 안빈낙도하는 신선이 아닌 이상에야 50, 60년 이상 살면서 어찌 티끌 하나 묻히지 않았겠나.

우리 사회 자체가 먼지투성이다. 주린 배 움켜쥔 채 먹고살겠다고 흙먼지 일으키며 내달린 세월이 얼마인데 청정 공기만 마셨을 리 없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가고 한쪽 눈을 슬쩍 감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발을 담그기도 했을 것이다. 반칙과 편법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지고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관행 밑으로 켜켜이 쌓인 모순과 부조리가 눈에 띄었다. ‘이제 정신차리자’고 해서 먼지 수북이 뒤집어쓴 부실 덩어리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는데, 괜찮은 먼지떨이 중의 하나가 인사청문회였다.

그리고 꼭 17년이 지났다. 일반 시민 자격도 갖추지 못한 지도층의 민낯을 수없이 봤다. 정권이 네 번 바뀌었어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꼴불견은 여전하다. 그래도 윗물을 맑게 하는 데는 썩 쓸모가 있다. 공직을 맡기 전에 자신이 남겨놓은 발자국을 돌아보게 하고, 미래의 고위공직자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럼에도 인사청문회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지겨워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략을 앞세워 멀쩡한 사람에게 치도곤을 안겨 초주검을 만드는 고위공직자의 무덤을 보는 것은 결코 신나는 일이 아니다.

여야는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거의 절반의 기간씩 공격과 수비의 자리를 바꿔가며 창과 방패를 들어봤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알고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국민감정’, ‘국민 눈높이’란 잣대도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위장전입하면 처벌하는 주민등록법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낙마시키는 것이 인사청문의 목적이 아니라면 이제 바꿀 때가 됐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는다면 “그럼 언제 바꾸느냐”고 되묻고 싶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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