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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누가 한국병을 치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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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5 21:51:58 수정 : 2017-05-25 21: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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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대책 없이 정책 쏟아내면
재정 고갈로 국가부도 불가피
포퓰리즘 바이러스 차단 위한
지도자와 국민의 각성 필요
국가도 병에 걸린다. 미리 손을 써서 예방하기도 하고, 말기 암 환자처럼 회복 불능에 빠지기도 한다. 가장 무서운 국가 질환은 포퓰리즘이란 병증이다. 한번 입맛을 들이면 담배처럼 좀처럼 끊기 어려운 까닭이다.

새 정부가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일은 정부가 대중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시혜의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취임 후 인천공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zero)’를 선언했다. 국가지도자가 경제적 약자인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선한 행동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선한 생각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국가는 신이 아니다. 당연히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새로운 혜택을 제공하자면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백화점이나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돈을 내는 일반적 경제원칙과 똑같다. 비정규직 폐지라는 착한 목적의 경우에도 누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길은 세 갈래로 요약된다. 기존 정규직이 부담하느냐, 공공기관이 부담하느냐, 양쪽이 공평하게 부담을 나눠 갖느냐. 그러나 정규직 기득권층은 비정규직에게 자신의 몫을 조금도 떼어줄 생각이 없다. 공공기관이 모두 부담하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형편이 여의치 않다. 공공기관 셋 중 둘은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만성 적자로 단단히 골병이 든 상태다.

비용 부담의 문제는 비정규직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노인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상향,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착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누군가 비용을 물어야 하는 정책들이다. 당장은 정부와 기업이 부담하겠지만 청구서의 최종 수령자는 결국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빤한 이치인데도 국민 대다수가 이 사실을 외면한다.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자는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해 청구서 발급을 재임 이후로 계속 미룰 것이다. 국민은 눈앞의 ‘공짜 복지’에 정신이 팔려 환호성을 지른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 그대로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재정이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순이다. 그런 병증이 바로 영국 병이고, 그리스 병이고, 남미 병이다. 영국은 마거릿 대처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만나 조기에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그리스와 남미 국가들은 지금도 중환자실에서 장기입원 중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포퓰리즘 병증은 아직 초기단계다. 그렇다고 안심할 계제는 못 된다. 자신은 돈을 낼 생각이 없으면서 ‘달콤한 곶감’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한 후보는 동문회의 장학금 기부 요청을 매정하게 뿌리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복지공약에 수십조원의 나랏돈을 투입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자기 돈 몇 푼에 벌벌 떠는 위인이 엄청난 국가 재원을 선심 쓰듯 뿌리겠다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국민과 정치지도자가 다를 것이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런 악성바이러스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는 것은 국민의 정신이 바로 선 덕분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한때 포퓰리즘에 솔깃한 적이 있다. 그런 국민을 향해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생각해 달라”고 외쳤다. 국민은 대통령의 용기 있는 연설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망국적 포퓰리즘을 차단하는 미국식 면역체계가 작동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미국 정신이다. 국민이 박수를 칠 곳은 ‘국가가 해주는 무엇’이 아니라 ‘국민이 해야 하는 무엇’이라야 한다.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포퓰리즘 바이러스에 모두가 결연히 맞서야 한다. 구국의 심정으로 나서는 지도자와 그런 일에 박수를 보내는 국민의 자세가 절박한 시점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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