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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바꿔놓은 ‘침묵의 살인자’ / 안드로메다 행성 얘기로 여겨 / ‘이게 나라냐’ 목소리 다시 나와 / 관심과 참여가 해결의 첫걸음 아침에 눈 뜨면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미세먼지 상태부터 살피고 있다. ‘좋음’이면 고맙고 ‘보통’이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나쁨’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면 마스크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마스크는 비상용으로 늘 갖고 다닌다. 출퇴근길에 버스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이고, 차창이 열려 있으면 바깥 바람을 쐬고 있는 승객 보란 듯이 창문을 일부러 힘껏 닫는 ‘오지랖 부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나쁘다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하는 식당에선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어쩌다 ‘미세먼지 좋음’ 때에만 볼 수 있는 푸른 하늘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런 날이면 밀린 빚 받겠다는 심정으로 사무실에서 가까운 인왕산 자락길을 찾는다.

이런 미세먼지 걱정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오버한다”는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나쁜 날에도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버스 창문도 아무 생각 없이 열어놓고 있을 것이다. 집안에 공기청정기까지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고, 자동차의 내부공기 순환버튼 사용 문제 같은 것은 아예 머릿속에 없을 것 같다. 미세먼지가 우리들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안드로메다 행성 얘기쯤으로 여기고 있다. 

김기홍 논설위원
‘수돗물 안전하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도 절대 그냥은 마시지 않으면서 코로 들어가는 미세먼지에 대범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수돗물을 못 먹겠으면 끓여 먹고 정수기 쓰고 생수를 사다 먹으면 된다. 미세먼지투성이인 공기는 안 마실 방법이 없다. 공기청정기는 임시방편이고 산소통 사다가 코에 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돼 있고, ‘침묵의 살인자’라는 악랄한 별명을 갖고 있다. 우리의 몸은 미세먼지로 인해 이미 어딘가 병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미세먼지 걱정을 병에 걸렸거나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으로 건강에 집착하는 ‘건강염려증’ 따위로 폄하해선 안 된다.

우리의 미세먼지 실태가 세계 최악인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2060년이 되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됐다. 2015년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미세먼지 사망자가 27명으로, 일본(17명) 미국(18명) 캐나다(12명) 등 주요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는 미국 보건영향연구소 보고서도 있다. 이 정도 되면 몽골처럼 미세먼지가 한국의 기대수명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미세먼지는 어느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무지와 욕심 속에 쌓이고 쌓여 우리 턱밑까지 차오른 뒤에야 보게 됐을 뿐이다. 미세먼지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과거엔 중국을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안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 핑계도 통하지 않게 됐다. 우리 미세먼지 예보도 믿지 못해 일본 기상협회 같은 외국 기상 관련 사이트를 뒤지는 상황이고 보니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해결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것은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을 골자로 한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 때 정책쇼핑몰 ‘문재인 1번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미세먼지 없는 푸른 대한민국’ 공약이었다. 앞서 환경재단 최열 대표 등은 한국·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세먼지 피해 소송을 냈다. 시민과 전문가 등 3000명이 참여하는 미세먼지 시민 대토론회가 오는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마침내 정부와 시민사회가 미세먼지 청소에 발벗고 나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세먼지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실을 보기 어렵다. 간절함이 없으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나 혼자만 괜찮은 안락한 세상은 없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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