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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비밀을 사랑하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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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1 01:12:38 수정 : 2017-04-11 18: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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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멜 “매수는 철저한 도덕적 타락” / 돈 거래 투명해져야 희망 있는 사회
돈이 없어 굶주린 이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빵을 훔쳤다. 분명히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격을 매매한 행위로 비난받는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자기의 경제적·정치적 목적을 위해 은밀하게 이해당사자에게 뇌물을 제공했다. 이 또한 인격과 돈의 교환이 명백한 행위다. ‘돈의 철학’의 저자 게오르그 짐멜은 이 두 행위 중 어떤 것이 더 문제인가를 논의한다.

돈과 인격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등가인 위반 행위지만, 그 행위가 이뤄지는 정황이나 심리적 의도 등을 종합할 때 뇌물 공여가 훨씬 나쁘다. 배고픈 이가 빵을 훔치는 행위는 신체 유지를 위한 순간적 충동으로 이뤄질 수 있기에 비교적 가벼운 죄과로 취급될 수 있다.

나아가 뇌물 수수는 순간의 직접성으로부터 가장 멀어진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이뤄진다. 굶주린 이가 빵을 훔칠 때의 자연적 충동이나 유혹으로 설명될 수 없다. 변명의 여지를 찾기 어렵다. 짐멜은 “돈에 의한 매수는 직접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가치를 통한 매수에 비해 보다 세련되고 보다 철저하게 타락한 도덕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따라서 돈의 본성에 의해 가능해지는 비밀성은 수뢰자에 대한 일종의 보호 장치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물품과는 달리 돈은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본질을 지닌다. 익명성과 무특성으로 인해 은닉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상징적 기호가 바로 돈이다. 이런 돈을 매개로 한 뇌물 수수는 기본적으로 비밀스럽게 이뤄진다. 그럴 때 돈은 수뢰자를 위한 보호 장치가 된다. 게다가 돈의 액수로 수뢰자의 품위를 존중하는 것 같은 환상을 주기도 한다. 대개 선물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어떤 형식이든 역사적으로 많은 뇌물 수수나 매수 행위가 이뤄졌다. 돈으로 다양한 성향의 표를 사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사례도 많았고, 경제적 성취를 거둔 예도 많았다. 목적이 클수록 뇌물의 크기도 비례했다. 짐멜은 영국의 의원내각제를 확립하고 초대 총리를 역임한 로버트 월폴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 자신은 절대로 매수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명하고 정당한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하원 전체를 매수할 준비가 돼 있었으며, 아마 전 국민을 매수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려는 역사의 이성은 뇌물의 공개성을 추구한다. 공공 이익의 보호 장치는 돈을 매개로 한 타락한 부패 행위를 들춰내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인간 생활의 절대적 수단인 돈이 절대적 목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예방하고자 한다. 돈에 기초한 물질문화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이상적 정신문화를 추구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는 물론 개인의 윤리적 의지와 정신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짐멜은 강조한다.

뇌물과 관련한 크고 작은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 또 성큼 다가온 선거 과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실한 마음이 긴장한다. 늘 문제는 비밀을 사랑하는 돈이었다. 비밀스러운 돈을 넘어 투명한 돈의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와 실천이 요긴하다. 그래야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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