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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박순실’에 발목 잡힌 대우조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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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9 21:49:08 수정 : 2017-04-11 18: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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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삼성 계열사 합병 찬성
국민 노후자산, 재벌 돕는 데 쓴 꼴
이번엔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의사 결정 판단 기준은 국민 이익
‘박순실’(박근혜·최순실) 그림자는 짙고 길다. 둘 다 구치소에 갇혔지만 그들이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곳곳에서 덧나며 후유증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연금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다.

재작년 여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의 중심에 섰다. 덩치가 커 ‘캐스팅보트’를 쥔 처지였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다.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바꾸는 합병비율이 문제였다.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된 비율이라는 거였다. 세계 최고 의결권자문기관 ISS도,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다며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손실 위험에도 국민 노후자산을 재벌을 돕는 데 갖다 바친 꼴이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4%를 갖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합병의 핵심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였다. 삼성은 ‘중복사업 정리’라는 사업재편 원칙에 따라 추진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이 왜 그랬는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정유라의 승마,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을 압박하면서 반대급부로 삼성에 제공한 게 ‘국민연금 찬성표’였다. 행동대장 역할을 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찬성을 압박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최고권력과 재벌의 음습한 거래로 국민 노후자산엔 구멍이 났다. 특검에 따르면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는 1400억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번엔 한국경제 효자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이다. 정부와 채권은행이 마련한 구조조정안은 자율 채무재조정을 전제로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손실분담 후에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을 투입해 회생시킨다는 것이다.

덩치 큰 국민연금은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대우조선의 운명이 국민연금의 손에 달린 형국이다. ‘50% 출자전환, 50% 3년 만기연장’ 대상인 대우조선 회사채 1조3500억원 중 국민연금은 29%인 3900억원어치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이 기권하거나 반대하면 자율 채무재조정은 실패하고 대우조선은 ‘P-플랜’이라는 단기 법정관리로 직행할 것이다.

2년 전과 다른 점은 부당한 압력을 지시하던 최고권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의사결정 장애를 겪고 있다. 최고권력이 남긴 상처, ‘삼성 트라우마’가 사라진 권력을 대신해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탓이다. 트라우마는 ‘책임지는 의사결정’을 피하라고 유혹한다. 국민연금이 17∼18일 사채권자 집회에 아예 나오지 않을 가능성, 즉 기권할 가능성을 예상하는 배경이다. “현 상태로는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지난 6일 국민연금공단의 입장 발표에서 낌새가 느껴진다.

국민연금공단 본연의 임무는 국민 노후자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 기금은 이익 최대화, 손실 최소화의 원칙으로 운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자율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측은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로 ‘기업 계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들지만, 국민연금 기권으로 대우조선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회생의 길은 더 멀어진다. 강제 채무재조정으로 손실도 확대된다.

기권하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으니 법적 책임 논란에서는 자유로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반대해야 할 땐 압력에 굴복해 찬성해 놓고, 그 때문에 곤욕을 치르니 이번엔 판단 자체를 포기해 또다시 손실을 키우는 우를 범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기권은 비겁한 책임회피다. 찬성이든 반대든 출석해서 당당히 결정하는 게 옳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대우조선을 살리려 총대를 멨다. 파산 충격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이 따르겠지만 그는 회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나라경제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건 정부 몫이다. 판단기준은 자산의 주인, 국민의 이익이면 족하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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