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적적한 마음에 경마장 찾았지...이게 낙이야”
금요일인 지난 24일 아침 일찍부터 경기도 과천 경마장은 노인들로 가득했다.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 역에 내리자마자 사람들은 경마정보지를 사기 위해 판매대로 달려갔다. 그들은 오전 9시 30분 입장을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24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역내 경마정보지 판매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
김씨는 자신이 도박중독인 것을 알지만 끊지 못하겠다고 푸념했다. 그는 경마를 하는 이유에 대해 “맞히는 재미가 있고 못 맞히면 약 올라서 베팅하고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선 주머니에서 14만원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지난주에 5천원으로 14만원을 땄다며 오늘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로비에서 만난 김모(72·여)씨는 홀로 적적한 마음에 경마장을 찾는다고 했다. 김씨는 경마장에 있는 지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둘러보면서 되는 거 있으면 걸고 아니면 그냥 구경하고...이게 낙이다”라며 8000원을 베팅한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이어 “연금을 타는 25일이면 노인들이 많이 온다”면서 몇몇 노인들은 자식에게 받은 용돈이나 고령연금을 경마 자금으로 탕진한다고 말했다.
과천 경마장 복도에서 경주 결과를 확인하고 있는 노인 |
사행산업통합관리위원회가 실시한 2016사행성산업이용실태조사에서는 도박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행성 도박 경험자 2882명 중 36.5%가 ‘혹시 돈을 따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답했고 27%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도박장을 찾는다고 답했다. 고령층은 돈뿐만 아니라 말동무를 찾아 경마장을 찾고 있었다.
과천 경마장에서 모니터를 통해 경마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노인 |
오전 11시 20분. 첫 번째 경기가 시작했다. 10번을 계속 중얼거리던 이씨는 걷는 자세가 사뿐사뿐한 것이 30년간 경마를 봐온 고수로서 상태가 매우 좋다며 찬양했다. 그리고 이내 창구로 가 10만원을 단번에 결제했다. 다른 사람들도 10번 말의 상태가 좋다고 느꼈는지 10번 배당이 특히 낮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10번 말이 3등을 한 것. 이씨도 말이 결승점을 통과하던 순간 욕설을 뱉었으나 당황하지 않고 다시 경마정보지를 펼쳤다.
과천 경마공원 벤치에 앉아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는 노인 |
그는 기자가 함께 있던 1시간동안 30만원을 잃었다. 창구 옆에는 ‘도박중독은 과도한 베팅(10만원 초과)에서 출발 합니다’라고 선명하게 명시 돼 있었지만 10만원의 기준을 지키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씨는 “창구를 옮겨 다니며 10만원씩 결제하면 되니 실제로 한도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마장 바닥에는 10만원이 결제된 영수증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경마장 실내에 버려져 있는 10만원어치 마권. |
'경주류 도박에 10만원을 초과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60대 이상 중 70%가량이 ‘있다’고 답했고 그중 ‘30회 이상 초과 경험자’는 7.5%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도박을 치료하려는 상담자 중 60대 이상의 비율은 3.5%로 젊은층에 비해 현저히 낮다”면서 “20,30대의 경우 가족이 나서 치료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령층은 주위에 만류하는 사람이 적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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