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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문벌가국과 재벌가국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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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7 21:21:26 수정 : 2017-04-11 17: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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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희생·특혜로 자란 재벌
성장과실 골고루 나눠야 할 때
경제위기에 상생 앞장서야
대한민국 재도약 원동력 될 것
필자는 오늘의 한반도 정치 현실을 ‘국민 없는 국가’(북한)와 ‘국가 없는 국민’(남한)으로 말한 적이 있다. 이는 남북한에 제대로 된 나라가 없다는 말이다. 이를 좀 더 소급해 조선조에 이르면 조선 후기는 문벌가국(文閥家國)이었다. 이때 ‘가국’이라고 함은 ‘국가’보다는 가문이나 문중이 우선이었다는 뜻을 내포한다. 지금도 한국은 족벌주의에 빠져있다.

조선조는 국가보다는 문벌 간에 당파싸움을 하다가 열강 제국주의의 경쟁 와중에서 일제식민지가 됐다. 조선조를 관통하는 정신은 중국 사대주의이다. 이것이 일제를 거처 더욱 악화돼 이제 사대·식민 체질이 돼버렸다. 오늘도 사대주의는 부지불식간에 우리 지식권력 엘리트를 지배하고 있다. 엘리트들은 국민이 안중에 없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광복 후 남북한은 서로 다른 길을 길었다. 소련 후원으로 건국한 북한은 일찍이 남한보다 발전한 중공업을 토대로 유리한 입장에서 산업화를 이끌어 1970년 중반까지는 국민총생산(GDP)이나 소득에서 남한을 앞섰다. 정확하게 1975년부터 이것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남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룬 경제개발계획과 산업화의 성공 덕분에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남한이 경제적인 충격을 받은 것은 김영삼 정권 말기에 자초한 IMF 외환위기(1997년)였다. 그 여파로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고 국가재산은 절반으로 줄었다.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를 견인한 군사정권 세력을 독재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국가 발전을 민주화 세력의 공으로 독식하려 했다. 이에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다툼은 당쟁으로 변모했다. 그 결과 내우외환 성격의 IMF 사태를 맞은 것이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문벌적·위선적 민주화는 역설적으로 산업화로 쌓아올린 한국경제를 타락시켰고,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햇볕정책 하에 남북 체제 경쟁을 희미하게 했다. ‘민주·민중’의 연합세력은 물론 그 후 보수정권도 민생을 외면했고, 지금도 제4차 산업화의 기회를 탕진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경제는 산업화 덕분에 임금과 고용 면에서 소득 증가와 기회균등의 건전성을 유지했는데 90년대 중반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난 20년간 사대적 민주화의 허상이다.

민주·민중 운동권 세력들도 집권하고부터 점차 보수·기득권 세력이 돼갔다. 말로만 진보였던 셈이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보수가 타락한 나머지 자기배반을 한 사건이다. 특히 법조의 타락이 국회의 타락을 가져오고,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랜데 대통령 후보군이 13명에 이르고 있고, 이 중 6명은 지자체단체장이거나 시장이다. 이만큼 국가가 사분오열되고 지리멸렬해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조에서 오늘날까지 한반도 역사를 싸잡아서 말하면 ‘문벌가국’에서 북한은 최악의 ‘세습왕조 전체주의 국가’로 후진했고, 한국은 산업화와 국가 만들기를 거쳐서 제법 근대국가다운 모습을 갖추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국가 없이 재벌만이 득세한 ‘재벌(기업)가국’이 돼버렸다. 이는 재벌 해체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는 지금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10대 재벌군이 있다. 재벌들은 경제성장의 이익을 독식한 채 재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저축만 하고 있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기업이 주식 발행이나 부채로 마련한 산업자금으로 생산하여 이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임금으로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도리어 대한민국은 기업이 저축하고, 국민은 ‘저임금과 저소득’으로 희생당한 채 은행 부채만 안고 있는 기형적인 나라가 됐다. 과거 ‘문벌’들이 나라를 망쳤듯이 오늘날 ‘재벌’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기업이 된 재벌들은 국민의 희생 위에 자신들이 성장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재벌과 재벌귀족(대기업 임직원)만 만든 셈이다. 지금 재벌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국민은 2등, 3등 국민이 돼있고, 청년들은 비정규직 일자리도 얻기 어려운 처지에서 ‘자포자기 세대’가 되고 있다. 재벌의 자성과 국면 대전환이 요구된다. 산업화 세력마저 고질적인 문벌주의에 오염돼 재벌주의로 타락했음을 보게 된다.

겉모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지만 속내는 조폭 집단처럼 국가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억누르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억누르고, 남성이 여성을 억누르는 그런 폭력사회의 모습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된다. 우리 사회의 ‘갑질 논쟁’이 불거진 것도 이러한 단면이다. 국민 대반성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한국은 어느 날 통일도 이루지 못한 채 남미처럼 열등국으로 전락해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삶의 환경이 가장 열악한 북한은 그야말로 ‘북한 지옥’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북한과 체제 경쟁 중인 남한의 젊은이가 ‘헬(지옥) 조선’을 외치고 있다. 북한과 남한이 모두 ‘헬’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걱정한다. 그렇다면 정반대로 삼성과 같은 재벌들이 국민과 함께하는 재벌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새롭게 재도약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역사는 항상 동시에 두 길을 제시한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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