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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함께 살고 생계 지원 받고… 17C 선비 이필익 유배일기 발견

입력 : 2017-03-26 21:39:30 수정 : 2017-03-26 2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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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기 선비인 이필익(1636∼1698)이 함경도 안변 유배생활을 기록한 일기가 발견됐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서 진행한 ‘조선시대 개인 일기 학술조사연구’를 통해 경기도 광주 만해기념관에서 이필익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일기 ‘북정록’(北征錄·사진)을 찾았다. 북정록은 오늘날 논산 일대인 충청도 이산(尼山)에 거주하던 이필익이 숙종 원년(1674) 유배지로 떠날 때부터 3년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숙종 5년(1679) 돌아오기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북정록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북찬록’(北竄錄)과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다만 1731년 김치후가 쓴 서문이 붙어 있는 북찬록은 이필익의 원본을 그의 손자 대에 필사한 것으로, 북정록이 그 원본으로 추정된다.

북정록을 살펴보고 해제를 쓴 이근호 명지대 연구교수는 “북정록에 묘사된 이필익의 삶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유배 모습과 달라 학술적 가치가 있다”며 “이필익은 법적으로 정해진 유배형의 규정을 상당 부분 지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정록에 따르면 이필익이 유배지에 도착하고 3개월이 지난 1675년 2월 처와 아들이 말 5필, 노비 6명을 이끌고 찾아왔다. 그는 귀양지에서 가족과의 동거를 금하는 법령을 어기고 집을 지어 식솔과 함께 살았다. 생계는 안변부사가 지급해준 땅에서 농사를 지어 해결했다. 또한 이필익이 유배지를 관할하는 안변부뿐만 아니라 각 군현의 수령, 서원과 향교, 유림 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안변부사는 이필익이 도착한 다음 달부터 술, 기름, 달력, 콩, 반찬, 약물을 제공하는 한편 조정의 소식을 전했다. 또 고향인 충청도와 경기도의 서원과 향교에서는 선비의 필수품인 지필묵(紙筆墨)을 보내왔다. 이필익이 유배형을 사는 죄인임에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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