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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봄이 되면, 검정색 정장을 입고 삼삼오오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옷차림만 얼핏 보면 상갓집 조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 남자는 넥타이를 매지만 여자는 치마에 넥타이를 하지 않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또한 구두, 양말, 허리띠까지도 거의 세트로 돼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입는 이런 검정색 정장을 ‘리쿠르트 슈트’라고 한다. 기업 입사를 위한 면접자나 올해 갓 입사한 기업의 신입사원들이 입는 옷이다.

가격은 젊은이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다양하지만, 옷의 디자인은 거의 획일화돼 있고, 옷 색깔도 검은색이 대부분이며, 간간이 감색이 눈에 뛸 정도다. 일본에서는 리쿠르트 슈트를 판매하는 전국적인 체인점이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이런 체인점에서 붕어빵처럼 만든 일률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이다. 


왕현철 KBS미디어 감사·전 도쿄특파원
일반적으로 면접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자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지원자의 개성 있고, 깔끔한 복장은 우선 첫인상에서 호감이 간다. 우리에게 지원자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대체로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지원자 내면의 깊이가 그 옷차림만큼 뒷받침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활기에 넘치고 개성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의 입사 면접이나, 첫 사회 활동을 내디디면서 획일화된 검정색 정장을 입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

필자는 일본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을 여러 번 했다. 일본인 지원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이와 성별의 상관없이 모두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왔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인 지원자도 일본인과 같은 옷차림으로 왔다. 나는 지원자들의 똑같은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면접이 끝난 후, 왜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면접하러 왔는가라고 추가 질문을 던졌다. 지원자들의 대답은 거의 모두 같았다. 학교에서 면접을 위해서 리쿠르트 슈트를 입어야 한다고 배운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일종의 관습이라고 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의 초등학교로 거슬려 올라간다. 일본의 초등학생은 세 가지가 획일화돼 있다. 교복, ‘란도셀’이라는 가방과 모자다. 나의 자녀는 일본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 규정은 없고, 자율복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강제성이 없더라도 학생들은 모두다 교복을 입고, 란도셀을 메고,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간다. 특히 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초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짧은 양말에 반바지를 입고,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쓰럽다. 그러나 학생들도 학부모도 누구 하나 불평을 드러내거나 자신만의 튀는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개인의 개성보다 조직의 틀에 맞추려는 일본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기업의 취직과 관련이 없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은 우리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개성을 중요시한다. 오히려 고등학생만 되어도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 색깔을 바꾸며, 화려한 장신구로 멋을 내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우려스러운 시선으로까지 보기도 한다.

그랬던 그 젊은이들이 기업이라는 조직에 들어가면서 바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개성을 감추고 집단의 틀에 자신을 맞추는 그러한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돋았고, 그러한 힘이 어디로 뻗어나갈지 경계의 눈초리를 뗄 수 없는 것이다.

왕현철 KBS미디어 감사·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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