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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잊지 말아야 할 피의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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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3 01:07:48 수정 : 2017-04-11 16: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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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검찰 기소로 수년째 고통받는 A씨가 있다. 그는 1심에 이어 2심까지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찰 상고로 여전히 족쇄가 풀리지 않았다. 그는 검찰 소환조사 당시를 떠올리면 악몽을 꾸는 듯하다고 말한다. 검사는 사건 프레임을 이미 짜놓은 듯 피의자 신문조서를 엮어 나갔다. 장시간 조사를 마치고 조서를 읽다가 잘못된 부분을 찾아냈다. “아니요”가 “예”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잘못됐다고 고치자 검사는 조서를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피의자가 마음대로 수정하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얼마나 기세등등했던지 검사 동의가 있어야만 조서를 고칠 수 있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 열렬한 검찰 개혁 지지자가 되어 있다.

검찰 소환조사를 경험한 이들은 한결같이 몸서리친다.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언사에 수치심을 겪었다는 이들도 많다. 정신 줄을 놓기 십상이니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니라면 검찰 조서를 꼼꼼히 읽고 꼬치꼬치 수정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신문조서를 열람해 읽고(조서열람권) 수정을 요구하는(증감변경청구권) 건 피의자 권리다. 만일 재판과정에서 신문조서 내용이 피의자 진술과 다르게 기재됐거나 직접 간인·서명·날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를 던져버려라.” 2006년 9월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판사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판사들이 검찰 수사기록에서 벗어나 법정 공판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었으나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여전히 재판에서 위력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서 21시간 조사를 마치고 어제 새벽 귀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14시간 동안 한웅재 형사8부장과 이원석 특수1부장한테서 신문을 받고 조서를 검토하는 데에 7시간을 썼다고 한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도 9시간 조사받고 3시간가량 조서를 검토했다. 조서 내용을 차근차근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피의자로서 현명한 권리행사다. 피의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방어권이다. 검찰청에 불려가지 않아야겠지만, 행여 가더라도 꼭 잊지 말아야 할 권리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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