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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직 대통령 4번째 소환… ‘오욕의 역사’ 마침표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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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2 01:01:42 수정 : 2017-06-05 16: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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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에 선 ‘피의자 박근혜’
국가적 수치 반복하지 않자면
정경유착 단절, 제도 개선 필요
참담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섰다.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것은 헌정 사상 4번째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의 죄목으로 구속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전 대통령의 소환으로 대한민국은 70년 헌정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추가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동 자택에서 검찰청사로 이르는 8분의 이동시간은 짧지만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착잡하고 울컥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추락을 지켜본 국민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4년 전 취임사에서 “힘을 합쳐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자”며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했던 당사자다. 취임 당일 ‘희망의 복주머니’를 열었던 광화문광장은 지금 박 전 대통령을 규탄하는 광장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어제 검찰에 불려나온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만 했을 뿐이다. 29자의 짧은 유감 표명이 전부였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태도는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향후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그는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복귀하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밝혔다. 법정 투쟁은 ‘자연인 박근혜’의 당연한 법적 권리다. 하지만 국정을 맡았던 국가 지도자라면 여기에 그쳐선 곤란하다.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국정 혼란 사태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어제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13가지에 이른다. 미르·K스포츠재단 774억원 출연 강요,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과 관련한 433억원 뇌물수수, 청와대 문건 유출 지시 등이 주요 혐의다. 최순실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공모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그간 “사익이나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던 만큼 검찰은 오직 증거를 통해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가려야 한다. 정치적 판단이나 외부의 입김이 작용해선 절대 안 된다.

다만 국격과 형법상의 불구속 수사 원칙 등을 고려해 인신의 구속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직 국가 원수가 수갑을 찬 채 오가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방영되는 일만은 최소한 피해야 한다. 외신들은 어제 “자리에서 쫓겨난 박 전 대통령이 광범위한 부패 관련 조사를 앞두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검찰의 심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타전했다. 국치의 장면이 해외에 지속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기관의 단죄와는 별개로 오욕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노력도 절실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그제 자신의 출간 간담회에서 “어떻게 보면 이번 탄핵은 한국 사회의 축복”이라며 “기득권으로 꽉 막힌 사회를 뚫고 낡고 오래된 시스템을 확 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적 수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질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국가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은 사적인 이익보다 국익을 앞세워야 한다. 자신의 지지 세력이나 정실주의에 휘둘리면 국정은 산으로 가게 마련이다. 정치권력과 기업이 이권을 주고받는 정경유착의 고리도 확실히 끊어야 한다. 전경련을 포함한 재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업을 압박해 이권을 취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과 같은 제도 개선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처럼 제왕적 대통령은 부패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현재 대통령 1인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견제하기 위한 개헌이 절실한 이유다. 불행한 대통령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하자면 앞으로 대선이 끝나는 대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낡은 구질서를 새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다.

탄핵 이후 국론 분열이 여간 심각한 지경이 아니다. 어제 검찰청사 앞에서도 “박근혜 구속”, “탄핵 무효”를 외치는 두 개의 집회가 열렸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위기를 겪고도 달라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검찰의 재조사가 시작된 만큼 이젠 대립과 갈등을 접어야 한다. 정치권도 국민을 하나로 묶는 일에 앞장서야 마땅하다. 진실 규명과 단죄는 검찰과 법원에 맡기고 국민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부패 청산과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태야 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국가 대혁신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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