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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국정농단 백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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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1 01:03:06 수정 : 2017-04-11 1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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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시스템 바꿔나가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야 / 초당적 독립 조사위 만들어 진상 파헤치고 보고서 내야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공식적으로 처음 국민 앞에 선다. 포토라인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궁금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자택 앞 메시지는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 이제라도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를 바란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탄핵심판 헌재 결정문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었다. 논리적이면서 읽기 쉬운 글이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를 파면했다. 법의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 결정문은 국정농단 사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관한 지침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많은 의혹들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는 뜻이다.

박완규 수석 논설위원
어느 나라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 백서라는 공식 보고서를 만든다. 예컨대 국방부가 매년 내놓는 국방백서는 국방 현안에 관한 사항들이 잘 정리돼 있어 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수시로 들여다본다.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해도 백서를 만든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이듬해 11월 대통령과 의회가 초당적 독립기관인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위원회’(9·11위원회)를 만들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어떻게 테러가 발생했고 그런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게 위원회 설립 목적이다. 위원회는 250만여쪽의 문건을 들여다보고 10개국 전·현직 고위 관리 등 1200여명을 인터뷰했다. 160명을 청문회 증인으로 불러 진상을 조사했다. 2004년 7월에 내놓은 최종 보고서는 테러의 원인에서부터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 W W 노턴앤컴퍼니는 이 보고서를 567쪽의 두툼한 책으로 만들었다. 무려 110만권이나 팔렸다. 국가적으로 관심이 큰 사안인 데다 읽기 쉽게 풀어썼기에 호응이 컸다. 온 국민이 9·11테러의 진상에 접근하고 문제점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수개월간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에 관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국정농단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법 절차와 별개로 정부와 국회가 관련 기관,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차분히 진상을 파헤쳐야 할 것이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이 일을 마무리짓고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국정농단이 왜, 어떻게 벌어졌고 국정시스템에 어떤 결함이 있었는지를 밝혀내 후대의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 사태의 재발을 막는 첫걸음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무엇을 조사해 기록하는 작업을 ‘사(史)’라고 했다. ‘맹자’에는 ‘춘추’의 편찬 의도를 밝힌 대목이 있다. “세상살이의 질서와 원칙이 쇠퇴하면서, 거짓된 말과 몹쓸 행동이 생겨났다. … 공자가 이런 세태를 걱정해 ‘춘추’라는 역사서를 지었다. … ‘춘추’가 완성되자 난신적자(亂臣賊子·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들이 벌벌 떨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악행이 기록으로 남을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흥왕 때 ‘국사’ 편찬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찬 이사부가 왕에게 아뢰기를 “나라의 역사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의 잘잘못을 기록해 포폄(褒貶·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함)을 후세 만대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서를 편찬하지 않는다면 뒷날 무엇을 보겠습니까”라고 했다.”

역사의 기록은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 국민은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을 알기를 원한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국정시스템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 규명을 검찰 수사에 맡길 일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 후 상세한 기록을 남겨 기억을 공유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이 지금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완규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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