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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미래세대에게 맡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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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4 01:24:09 수정 : 2017-04-11 16: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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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민주화 성취 이룬 태극기 어른들 충정 믿어 / 구질서 바꾸는 대장정 위해 젊은이들 믿고 힘 보태달라 해방둥이(1945년생) 작가 정종섭은 22년 전 광복 50돌을 맞은 소회에서 “지난 50년의 역정은 한마디로 피곤하고 숨 가쁜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은 늘 굶주림에 허덕였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는 모질고 변화무쌍한 정치의 소용돌이에 어떤 형태로든 휘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로는 분노했고 때로는 절망했던 질곡의 역사였다”고 회고했다. 이제는 머지않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가 온다고 하니 50세 가장인 나에게도 분노와 절망과 질곡의 삶을 벗어날 기회가 올 것만 같다고 기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작년 10월에 발표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632달러였다. 1만달러를 한참 지나 3만달러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으니 해방둥이 세대가 한결같이 품었을 소망이 이뤄졌다면 지금쯤은 힘들었던 과거를 추억의 책장 넘기듯 하며 윤택하고 안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상당수는 질곡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불행의 덫에 갇혀 있다. 2015년 노인 빈곤율은 63.3%이고,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58.6명으로 전체 인구 자살률(10만명당 26.5명)의 2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나 된다.

김기홍 논설위원
그들의 지난 세월이 통째로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압축·고속 성장의 과실을 맛보았고,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맞은 민주주의가 선사하는 자유와 정의의 바람을 맞아봤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일제 식민지를 보내고 6·25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기며 산업화에 앞장서고 민주화에도 힘을 보태기도 했는데, 살벌한 경쟁 정글에서 살아남은 격동의 세대가 맞닥뜨린 말년의 간난은 가혹하다. 그런 상실감 박탈감이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젖게 하고 박근혜를 끌어안게 했을 수 있다. 적폐 청산 주장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모욕감을 느꼈을 수 있다. 태극기를 든 광장에서 노년의 외로움, 단절, 소외를 잠시나마 잊고 모처럼 존재의 이유를 확인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애국심은 믿듯이 태극기 어른들의 애국충정을 의심하진 않는다. 촛불세력이 미덥지 못하고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노심초사가 ‘아스팔트 길을 피와 눈물로 덮어버리는 시가전’ 운운하는 분노로 변질된다면 애국이라고 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날까지 새출발을 준비하는 국민들 가슴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승복’을 말하지 않았고 지지자들에게 보낸 차디찬 미소와 눈물은 집단 최면을 거는 주술 같았다. 주술에 갇힌 몇몇 친박들은 헌재 탄핵 결정 무효를 주장하고 헌재 해산·탄핵심판 재심을 요구하고 해산과 새로운 국회를 위한 신당 창당을 말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고 헌법 질서를 흔드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고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것은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민의 이름으로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중대 범법자를 심판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숭고한 가치를 지켰다. 헌재 탄핵심판 결정문을 통해서는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임을 확인했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빨갱이들’에게 넘겨주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어둠을 걷어내고 화해와 포용으로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려 한다. 대통령 파면은 박근혜만 물러나게 한 것이 아니고 지난 수십년간 한국을 지배한 구질서를 바꾸려는 대장정의 시작이다. 그 길은 지난 50여년 산업화 민주화 시대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한강의 기적’을 성취한 어른들의 지혜와 경륜이 합쳐지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젊은이들에 대한 불신을 털고 믿어줄 수는 없나. 어제의 분열을 끝내고 내일을 개척할 수 있도록 흔쾌히 지지와 박수를 보내줄 수는 없나. 이제 미래는 미래세대 손에 맡겨달라.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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