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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박근혜의 올림머리, 그리고 이정미의 헤어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입력 : 2017-03-11 14:39:35 수정 : 2017-03-12 12: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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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이 지난 10일 오전 전국민의 시선이 헌법재판소로 쏠린 가운데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출근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날 오전 7시50분쯤 헌재에 도착한 이 권한대행의 머리에 분홍색 헤어롤 두 개가 말려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촬영한 그의 사진은 곧바로 ‘얼마나 긴장했으면’, ‘얼마나 재판에만 집중했으면’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왔다.

당황한 헌재 측은 기자들에게 “이정미 재판관이 어제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하고, 아침에 너무 정신없이 나오다보니 머리도 헝클어지고 엉망이었다. 방송사들이 되도록 이정미 재판관 출근 영상을 안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재판관의 실수에 이목이 쏠리거나 가십거리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이 지난 10일 오전 헌법재판소에 들어서는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머리에 꽂힌 두개의 헤어롤이 많은 화재를 뿌렸다. 동그란 헤어롤 모양을 (탄핵)‘인용’으로 변형한 사진과 탄핵 찬성 8명이라는 의미의 숫자 ‘8’로 변형한 사진.
 예상대로 헤어롤을 꽂은 채 출근하는 이 권한대행의 사진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곧바로 패러디 사진이 돌았다.

그러나 패러디 사진은 두 개의 동그란 헤어롤을 한글 초성으로 활용해 (탄핵)‘인용’이란 글씨로 변형하거나, 재판관 전원 탄핵 찬성을 의미하는 숫자 ‘8’로 변형한 것들이었다.

모두 탄핵이 인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넷심의 표현이었다. 헤어롤을 꽂은 이 권한대행을 희화화한 사진은 없었다.

두 개의 헤어롤은 탄핵을 암시한다는 해석 뿐 아니라 각계 각층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며 외신에도 소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머니 고 육영사 여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올림머리를 고수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지만, 이제는 ‘불성실’의 상징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이 권한대행의 헤어롤은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대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면서 지지자들에게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자 육 여사의 올림머리를 연출해왔고, 자신의 트레이드로 만들었다.

흐트러짐 없는 올림머리는 일반 여성들이 혼자 하기도 힘들고, 머리핀만 수십개가 필요할 정도로 손질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이 헤어스타일리스트를 청와대 관저로 불러 올림머리를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흐트러진 머리까지 전문가의 손길로 다시 ‘연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다.

대통령이 구조에 온 힘을 다해도 모자를 골든타임에 머리 손질 등으로 허비한 7시간 행적은 탄핵심판에서도 지적됐다. 헌재는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 행적이 탄핵 소추의 사유가 될수는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며 보충의견으로 결정문에 남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7년 3월 16일 새마을궐기대회에서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걸스카우트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퍼스트레이디였던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지세력 결집에 활용했던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혼동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온화한 퍼스트레이디의 상징이었던 올림머리는 불성실의 상징으로 추락했다.

반면 헌재에서 수십명의 기자들과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가운데도 머리에 헤어롤이 꽂힌 줄도 몰랐던 이 권한대행의 출근 모습에는 ‘아름다운 실수’, ‘일하는 여성의 진짜 모습’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물론 일 하는 여성은 빈틈없이 화장하고 말끔하게 차려입으면 안되고, 부스스하거나 어딘가 빈틈이 있는 차림새여야 일에 몰두하는 여성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고작 몇 천원 하는 헤어롤은 미용실에 자주 갈 수 없는 여성들이 고불고불한 파마머리가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 혼자 손질할 때 쓰는 도구다. 최저 비용과 최단 시간을 투자하는 최소한의 꾸밈 비용인 셈이다.

그 소박한 헤어롤은 일하는 많은 여성들에게는 동질감과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높은 유리천장을 뚫었던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유리 파편에 찔리는 듯한 아픔과 좌절을 느낀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가의 앞날이 좌우될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이 권한대행이 역사적 소명을 얼마나 무겁게 느끼고, 고뇌하고, 긴장했는지 국민들은 느낄 수 있었고 감동했다.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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