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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천동설을 믿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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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6 21:27:21 수정 : 2017-04-11 13: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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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토끼처럼 빠르지만
진실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진실의 보물’ 발굴하려면
냉철한 이성과 용기 지녀야
진실은 왜 고귀한가. 한 마디로 진실은 적고 거짓은 모래알처럼 많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 넘치면 값이 떨어지고, 부족하면 치솟는 법이다.

진실을 찾는 일은 맨바닥에 바늘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바늘이 서 있는 각도는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넘어지는 각도는 수만 가지도 넘는다. 더구나 거짓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변종을 만들어낸다. 진실보다 거짓이 세상에 더 판치는 이유다.


배연국 논설실장
진실은 전파력에서도 거짓에 훨씬 못 미친다. 속이 답답할 정도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다행히 생명은 길다. 당대에 주목받지 못한 성인들의 말씀이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거짓은 정반대다. 생명이 짧은 대신 무서운 속도로 사람의 입과 입으로 퍼져나간다. 진실이 거북이라면 거짓은 토끼다. 실제로 거짓은 토끼처럼 빠르고 번식력도 뛰어나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이 아니다. 터무니없는 거짓은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별로 전파력을 갖지 못한다. 약간의 진실을 혼합한 거짓일수록 파급력이 강하다. 유언비어가 딱 그런 경우다.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체계도 진실로의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기 그림이 있다. 미국에서 기업 임원들을 교육시키던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백인과 흑인이 싸우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밖에 있던 한 사람을 강의실 안으로 불렀다. 그림을 본 수강생 한 명이 강사의 지시에 따라 그림 내용을 그에게 설명했다. 방금 설명을 들은 그 사람은 밖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다시 그림을 설명해주었다. 이런 과정을 5번 되풀이한 뒤 맨 마지막 사람이 전체 수강생들 앞에서 발표하게 했다. 다음은 발표 내용이다.

“흑인과 백인이 싸우고 있었고 몇몇 승객들이 거기에 가담했다.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흑인은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백인은 양복을 입고 흑인은 작업복을 입고 있다.”

실제로는 전철 안에서 백인이 흑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백인이고, 양복 입은 흑인이 쩔쩔매고 있다. 칼을 든 사람은 백인이었고 다른 승객들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 얼마나 심하게 사실이 왜곡되었는가. 겨우 5명을 거쳤을 뿐인데 결과가 이런 정도다. 전달자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편견을 토대로 남의 말을 듣고 옮기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전철 안의 예화를 접하면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정보와 지식도 얼마든지 진실과 동떨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불완전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평가한다. 나의 인식체계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니 진실의 발견이 바닷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일처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군중의 위력보다는 홀로 고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기백이 있어야 한다. 진실을 영접하려면 과학적 사유와 비상한 정신력이 필수적이다.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거짓에 맞설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런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 지동설을 외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의 사회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어서도 신념을 꺾지 않았다. 대중이 믿는 것을 따르지 않고 냉철한 이성을 좇았다. 결국 진실은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갈릴레이 한 사람 편이었다.

진실은 거짓의 옷을 벗겨내야 감히 접근이 허락된다. 진실의 민낯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부끄럽고 추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대면할 수 있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최순실 사태와 대선정국을 맞아 진실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짜뉴스가 춤을 추고 온갖 유언비어가 횡행한다. 헌재든 특검이든 촛불이든 태극기 세력이든 세상을 향한 눈길을 각자 자기에게로 돌려보라.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나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는가. 거짓에 당당히 맞설 용기를 갖고 있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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