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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소를 잡아먹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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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4 00:40:02 수정 : 2017-04-11 13: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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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 궁리에 눈먼 대선주자들, 빚 내 돈 풀면 국민 부자 되나 / 그리스 꼴 당하지 않으면 다행 / “경제 일으키자”는 말 왜 안 하나 조선에서 초정(楚亭) 박제가만큼 청나라를 잘 알았던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사행단을 따라 세 번이나 청에 갔다. 한 번은 이덕무와 함께 갔다. 두 사람은 모두 서얼 출신의 실학자다. 그가 청에 간 것은 건륭제 때다. 이때 청은 중국대륙을 지배한 역대 왕조 중 가장 번성했다. 국부가 쌓여 3년이나 세금을 걷지 않았다. 문화도 꽃피었다. “천하의 책을 모으라”는 조칙을 내린 건륭제. 21년에 걸쳐 7만9000여권의 책을 정리했다. 바로 사고전서(四庫全書)다.

청을 속속들이 본 박제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난한 조선을 바꿔야 한다.” ‘북학의(北學議)’는 그 소산이다. 북학파의 호칭도 이 책에서 비롯된다.

강호원 논설위원
북학의에 담긴 주장 하나. “소를 잡아먹지 말라.” 이렇게 썼다.

“이곳(청)에서는 소 도살을 금한다. 황성 안에는 저포(豬舖·돼지 고깃간) 72곳, 양포(羊舖) 70곳이 있다. 한 곳에서 하루 돼지 300마리를 판다. 양도 마찬가지다. 우육포(牛肉舖·소 고깃간)는 2곳뿐이다. 우리나라는 날마다 소를 반천(半千·500마리)씩 죽인다. 나라 제향, 군사, 성균관 사람을 위해 오부(五部) 안에만 24곳의 고깃간을 두고 있다. 300여 주(州)에도 고깃간을 열어 둔다. … 혼사, 장사, 활쏘기 시합 때에도 소를 도살한다. … 날마다 반천씩 죽이니 어찌 당하겠는가.”

왜 소 도살을 그토록 안타까워했을까. 소는 일꾼이다. 소를 마구 잡아먹으니 무엇으로 생산을 늘리고, 무엇으로 국부를 일구겠는가. 먹을 것도 없는데 세금만 걷고자 하니 가렴주구가 판을 친다. 답답했던 박제가는 이렇게 소리쳤다. “왜 돼지와 양을 기르지 않는가.”

북학의는 고담준론을 논한 책이 아니다. 소 이야기 같은 쉬운 글로 채워져 있다. 지식이 모자라 그런 글을 썼을까. 정조의 발탁으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들어가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은 박제가가 아니던가. 승지에도 올랐다. 서얼이었기에 직함 앞에 가(假) 자가 붙었다. 북학의를 쉽게 쓴 것은 실사(實事)로써 조선을 바꾸고자 했기 때문이다.

부강한 대청제국. 소 한 마리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가난한 조선. 붕당의 다툼 속에 ‘소 잡아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 내지 못했다. 박제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쇠망은 머지않다.”

대선은 또 달아오른다. “내가 대통령 감”이라는 소리가 요란하다. 대선주자마다 지난날이 잘못됐다며 뜯어고치겠다고 목청을 돋운다. 귀청이 따갑다. 그렇게 훌륭하다면 지금쯤 국민은 희망에 부풀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영 딴판이다. 희망? 외려 정치를 걱정한다. 오죽했으면 조계종 무산 스님은 동안거를 끝내자마자 ‘삼독(三毒) 불바다에 빠진 세상’을 걱정했을까. 정치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버리라.”

이 정도라면 난장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정치를 걱정하는가. 엉뚱한 말만 늘어놓는 탓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공부문에서 81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이재명 성남시장, “연간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겠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국민개병제를 모병제로 바꾸겠다.”

돈은 있는가. 나라는 누가 지키나. “돈 벌어 세금 내는 일자리는 늘지 않는데, 돈 쓰는 일자리가 얼마나 오래 지탱되겠는가.” 박병원 경총 회장의 한마디가 모든 사탕발림 말을 압도한다.

그리스 부도 폭탄은 또 터질 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결국 폭발할 것”이라고 했다. 부도가 나든, 안 나든 그리스 국민은 가난해진다. 왜? 망하지 않으려면 쥐어짜야 하니. “연금을 줄이면 안 된다”고? 허망한 소리다.

우리 경제는 어떨까. 곳곳에 아우성이다.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빚 불릴 말만 한다. 빚을 내 돈을 나눠 주면 아우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가. 박제가의 말처럼 소 잡아 잔치판을 벌이겠다는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가난한 조선의 운명은 되살아나지 않을까. 소 기를 생각을 하지 않는 정치. 가난과 쇠망은 가깝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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