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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트럼프 시대, 미국과 국제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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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6 21:58:41 수정 : 2017-02-06 21: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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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선주의 실행에 옮겨
일시적 광풍에 그치지 않을 것
대미 협상전략 서둘러 수립하고
국제질서 혼돈에 대비해야
“내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은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취임 연설) “나쁜 놈들을 막지 못하면 미군을 내려보내겠다.”(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환율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제약회사 임원 간담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어록이다. 취임하면 언행에 신중을 기하리라는 예상을 깼다. 관례를 무시하고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 세상을 뒤흔든다. 정치 훈련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정치인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보름 남짓한 기간에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행정조치들을 쏟아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으로 세계를 경악케 했다. 법원 판결로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이 걸리자 일개 판사의 터무니없는 의견이라고 몰아붙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의 정책은 보수 논객 패트릭 뷰캐넌의 주장과 흡사하다. 1992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뷰캐넌은 ‘보수주의 재정립’을 선언하면서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 반이민을 내세웠다. 뷰캐넌은 실패했지만 트럼프는 성공했다. 미국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이 쓴 ‘정치와 비전’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공화당원들은 미국 역사에서 독특한 현상으로 진화했다. 열광적으로 교조적이고, 열성적이며, 무자비하고, 기회주의적으로 대중에 영합하며, 친기업적인 주요 정당이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을 거두는 전례 없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 현상이 일시적 광풍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면면은 설상가상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라인은 힘을 과시하는 강경파 일색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시저 무역대표부 대표,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 등은 보호무역주의 신봉자들이다. 극우 성향 매체를 창업한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대내외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트럼프의 폭주는 국가 간 협력·공조를 토대로 한 국제질서를 위태롭게 한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미국을 의혹에 찬 시선으로 보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럼프를 유럽의 미래에 대한 최대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 게다가 트럼프 현상은 미국 밖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는 반세계화, EU 탈퇴, 반이민, 보호무역주의 공약으로 ‘프랑스판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경제력뿐만 아니라 예외적인 포섭 능력이 있었기에 국제질서를 주도해 왔다. 동맹국들의 자발적 참여·협력을 이끌어낸 덕분에 미국의 패권적 질서는 정통성과 지속성을 지녔다. 트럼프는 그러한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는 형성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 틈을 타 중국이나 러시아가 분쟁지역 등에서 자국 역량의 한계를 시험하려 할 수 있다. 갈등이 통제되지 않으면 전 세계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이다. 미국 조야에선 대북 선제타격론까지 공론화하는 실정이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우리는 대미 협상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에 따른 국정 공백이 이처럼 큰 것이다.

격동의 시기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 체제를 바로 세워야 하지만 국내 문제에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질서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계화, 민주주의, 인권을 핵심 가치로 삼아온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런 가치들을 외면하고 실익만 따지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 리더 역할을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국제질서 혼돈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때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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