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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어린이식당 "밥 굶는 아이가 없기를"

입력 : 2017-02-21 12:56:34 수정 : 2017-02-21 20: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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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하거나 밥을 굶는 아이들을 위해 평범한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시민들이 정성을 보태 이들 어린이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어린이 식당'은 일본 전역에 150여곳이 있으며, 지금도 그 수가 늘고 있다고 20일 NHK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 운영하는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의 홈페이지 모습.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배고픔을 달래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외로움을 달래준다. (사진=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어린이 식당은 지난해 이세하라시의 한 대형 쇼핑센터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기부와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모여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100엔(약 1010원)에 식사를 제공했다. 고교생도 매월 2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 식당이 일본에서 처음 문을 연 뒤 공영방송 NHK를 통해 아동 빈곤문제와 더불어 사연이 전국에 전해지자 동참하고 싶다는 이들이 일본 각지에서 나타났다.

어린이 식당은 처음 100엔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감당키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비용 문턱을 없애 대부분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돈을 받더라도 100엔을 넘지 않는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생업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가 적자를 감수한 채 꾸리거나 여럿이 사비를 갹출해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복지단체도 힘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이들 식당 운영자는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식재료에 인스턴트를 배제하고 하나하나에 신경 쓴다. 이렇게 영양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으로 아이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일본의 한 '어린이 식당' 정경. 아이들이 언제든 와서 또래 친구들과 식사할 수 있게 항상 문을 열어둔다. 행여 문을 열지 못해 발걸음을 돌리는 아이가 없길 바래서다.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의 홈페이지를 찾으면 이처럼 전국 150여곳의 위치와 운영시간, 연락처, 가격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사진=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시민들의 이런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하자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본 지방정부도 뒤늦게 지원에 나섰다.

NHK에 따르면 오사카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지원을 강화하려고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는 개인과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최근 실시한 '어린이 빈곤실태'를 통해 실상을 파악하고, 올해 예산에 2억4800만엔(약 25억 660만원)을 반영했다.

어린이 식당에서 자원봉사하는 한 시민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힘들게 살아왔던 기억이 남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배고픈 설움은 배고팠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나와 같은 아픈 기억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없었으면 한다"며 자원봉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 '어린이 식당'에서 또래 친구들과 모여 식사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이들의 얼굴에서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도쿄도 토시마구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는 미키(12·가명)양은 어린이 식당이 생긴 덕에 "지금은 배고프지 않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미키양은 어려운 사정 탓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아울러 고립된 생활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엄마가 일하러 가면 온종일 혼자 집에 머물며 하루 한 끼조차 먹기 힘들었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히키코모리'(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해왔다. 엄마가 더 힘들어 보여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런 미키양이었지만 어린이 식당을 찾아 또래와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고,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올해 초부터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됐다.

미키양은 "친구와 함께 노는 게 가장 즐겁다"며 "전에는 어두웠는데, 지금은 (환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도 토시마구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는 미키(12·가명)양은 "온종일 혼자 집에 머물며 하루 한 끼조차 먹기 힘들었다"며 "엄마가 더 힘들어 보여 참아왔다"고 고백했다. 이런 미키양이었지만 어린이 식당을 찾아 또래와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고,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미키양 또래의 여자아이가 어린이 식당에서 또래와 밥을 먹고 있다.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는 '어린이지원 네트워크'의 쿠리바야시 치에코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양분을 보내 에너지가 된다"고 말했다. 혼자 힘들어하는 어린이들을 향해 "외로워하지 말고 언제든 식당을 찾아오라"고 응원했다.
일본에서는 홀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밥을 굶는 아이들이 늘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반찬도 없이 한끼를 때우는 어린이의 모습.
어린이 식당은 항상 문을 열어둔다. 행여 문을 열지 못해 발걸음을 돌리는 아이가 없길 바래서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 NHK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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