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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목화 재배·호피 진상… 한반도 생태환경 바꿨다

입력 : 2017-02-18 03:00:00 수정 : 2017-02-17 19: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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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지음/푸른역사/2만원
조선의 생태환경사/김동진 지음/푸른역사/2만원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는 조선의 복식문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농업 경관과 경제 시스템을 바꿨다. 고려 말까지 비단, 모시, 삼베,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던 사람들은 목화 덕분에 바람이 잘 통하면서 가볍고 질긴 면포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일본과 여진은 조선의 면포를 구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면포는 조선에게 부를 안겼고, 일본과 여진을 제어할 수 있는 외교력의 원천이 됐다. 면포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목화 재배 농가도 늘었다. 이는 한반도 생태환경의 연쇄적 변화를 촉진했다. 산림지대는 목화를 재배하기 위한 밭으로 바뀌었고 화전 개발이 촉진됐다. 이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었고, 사람과 가축 사이의 접촉이 늘어나 전염병에 의한 생태적 재앙을 불러오기도 했다.

김동진 한국교원대 교수가 출간한 신간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500여년간 이어진 조선시대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환경 변화를 조명한 책이다. 필요한 자원 대부분을 주변 자연환경에서 얻어야 했던 한국인들의 움직임이 한반도 생태환경을 변화시켰고, 역으로 변화된 생태환경의 영향을 인간이 받았다. 목화가 불러온 변화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이유를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단종이 즉위한 1452년 우부승지 권준, 공조참판 이사순이 명나라 사신을 만나 호피(狐皮) 40장을 전했다. 호랑이 가죽인 호피는 조선이 중국과 일본 사신에게 건네는 흔한 선물이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전국 대부분의 군현에서는 호피 혹은 표범 가죽인 표피를 매년 3장씩 진상해야 했다. 조정이 해마다 거두는 호피와 표피는 1000여장에 달했다.

하지만 오늘날 호랑이와 표범은 우리나라에서 절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문제는 토지였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해졌고, 그 결과 인간은 호랑이와 표범이 서식하던 땅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조선 조정이 호랑이에게 화를 당하는 호환(虎患)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호랑이 포획 정책에 나선 것도 호랑이 감소의 원인이 됐다.

저자는 “영조가 즉위한 1724년 호피와 표피를 바치게 하는 제도가 영구히 폐지됐다는 사실은 이들 동물의 개체 수가 극적으로 줄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며 “호랑이와 표범의 출산 주기와 평균 수명, 번식률을 고려하면 한반도에는 각각 4000∼6000마리의 호랑이와 표범이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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