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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누가 혁신을 죽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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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3 00:45:34 수정 : 2017-02-03 00: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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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과 복종의 ‘갑질문화’로는 창의적 사고 일어날 수 없어 / 수평적 쌍방소통 전제돼야 과학 발전과 기술 번영 가능 똑같은 사람끼리 왜 저런 굴종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고국을 찾은 30대 한인 과학자의 뇌리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그는 세계적 혁신기업 테슬라에서 자율 주행 자동차를 연구하는 연구개발 엔지니어다.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태평양을 건넌 지는 10년이 되지 않았다. 아직 미국보다 한국의 관습에 더 익숙한 그에게도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는 거북스럽기 짝이 없었다. 조직 내 상하관계가 명령과 복종의 갑을관계로 꽉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예문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한마디로 평했다.

젊은 과학자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임원들을 면담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부시장을 만났다. 창조혁신센터에서 4차 산업과 혁신에 관해 강연도 했다. 부시장을 만나러 관청에 들르자 안내 공무원은 젊은 과학자에게까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이윽고 부시장이 나타나자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네, 네”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모습은 혁신을 소리치는 초일류 대기업에서도 재현됐다.

배연국 논설실장
권위주의 문화는 그가 참석한 세미나 곳곳에 배어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직원들은 형식적인 일에 많은 신경을 썼다. 참석자들의 명패를 준비하고 식사 장소와 식순을 챙기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는 얘기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윗사람 눈치만 살피는 환경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한국은 4차 산업을 추구하지만 사회 문화는 전혀 ‘4차적’이지 않다”고 개탄했다.

젊은 과학자들의 ‘노예 문화’ 발언은 솔직히 귀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것은 영락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한인 과학자는 단지 그 민낯을 들춰내 우리에게 보여줬을 뿐이다. 권위주의가 팽배한 문화에선 건전한 파트너십 형성이 불가능하다. 하급자가 윗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보다는 그의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서 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신입 여사원이 주차를 하다 빌 게이츠의 새 차에 흠집을 냈다. 당황한 그녀는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상사에게 물었다. 상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죄송하다는 메일을 보내세요.” 그녀는 상사의 조언대로 빌 게이츠에게 사과의 메일을 보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빌 게이츠로부터 답글이 도착했다. ‘사람이 다친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것을 환영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차공간에서조차 직급에 따른 차별을 두지 않는다. 먼저 오는 사람이 좋은 자리에 세우면 그만이다. 사내 복장도 청바지를 입든 면티를 입든 상관이 없다.

한인 과학자가 다니는 테슬라 역시 마찬가지다. 상의할 일이 있으면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이 과학자 역시 자신의 연봉 책정에 불만이 있다고 했더니 곧 최고 경영자와 면담 일정이 잡혔다고 한다.

소통의 당사자는 당연히 사람이다. 사람 대 사람, 인간 대 인간의 의사교환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 원활한 소통은 이뤄질 수 없고 창의는 봉쇄되고 만다. 세계적 혁신기업들이 권위주의를 없애고 소통의 통로부터 뚫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창조경제를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예전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소통의 물길이 권위의 장벽에 막힌 탓이 크다. 불통의 권위주의는 대통령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DNA처럼 박혀 있다. 지금 우리 시대가 겪는 혼란도 권력자와 대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종속적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런 풍토에서라면 노벨상과 같은 과학적 성취는커녕 민주주의마저 왜곡되게 마련이다.

얼마 전 정부는 세종시 전역에서 2020년부터 자율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꿈의 자동차가 도로 위를 질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자율적 자동차’가 활주하는 AI 세상을 노예문화에 찌든 ‘타율적 인간’이 과연 지배할 수 있을까. 갑을관계로 꽁꽁 묶인 사회에선 창의와 혁신의 두 바퀴는 절대 구를 수 없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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