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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부지런해야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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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24 00:49:48 수정 : 2017-01-24 14: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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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은 임금의 근본이요, 게으르고 거친 정치(怠荒)는 망국의 근원.… / “내가 대통령감”이라는 대선 주자들, ‘부지런한 정치’의 뜻은 알고 있는가 근정전은 조선의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조선을 개국한 지 3년 뒤 지어졌다. 조선과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니 얼마나 공들여 지었을까. 그래서인지 어떤 현대식 건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왜 근정(勤政)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태조실록에 이유가 나온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글을 올려 근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된다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사의 큰일은 어떠하겠습니까.”(天下之事 勤則治 不勤則廢 必然之理也. 小事尙然 況政事之大者乎.) 이런 말도 한다.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강호원 논설위원
정도전은 조선 최고의 두뇌라고 할 만하다. 왜? ‘근정’ 두 글자를 편액에 써 붙여 힘이 하늘을 찌른 이성계를 가르쳤으니 그렇다. 그는 부지런함이야말로 최고의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더 대단한 사람은 이성계다. “근정은 임금의 근본이요, 태황(怠荒)은 망국의 근원이다.” 근정 편액을 걸게 한 이성계는 매일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도, 후손도 부지런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세종대왕. 참 부지런했다. 몸이 아파도 정사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 한글을 창제한 것도 따지고 보면 부지런함의 소산이다. 숨을 거두기 8년 전 소갈병을 앓은 세종은 사소한 정사를 세자 문종에게 모두 맡기고 문자 연구에 몰입했다. 방에 불이 꺼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 최고의 음운학자 세종, 마침내 숨을 거두기 5년 전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부지런함은 문자를 바꾸고, 문자 개혁은 역사를 바꿨다.

영조도 부지런한 임금이다. 세종대왕 못지않았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때는 숙종, 경종 두 대에 걸친 당파 싸움으로 난장판이 되다시피 한 때다.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사화(士禍) 조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막장 정치가 판쳤다.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난 영조는 부지런히 공부했다. 왕의 공부인 경연(經筵)에 관한 한 영조를 따를 임금이 없었다고 한다.

영조 4년 1728년, 80세 노신 정제두는 영조가 따라 주는 술을 소매에 부으며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힘써 행해 마지않으면 어찌 치평(治平)을 이룰 수 없겠습니까.… 오늘에는 탕평 한 가지 일만이 세상을 구제할 것이니 위에 있는 자부터 반드시 공(公)을 넓히고 사(私)를 버려야 합니다.”

영조는 그 말을 따랐다. 가장 중하게 여긴 것은 경연이었다. 경연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해가 뜰 무렵 조강(朝講)을 시작해 낮에는 주강(晝講), 늦은 오후에는 석강(夕講), 밤에는 특강인 야대(夜對)를 하고 사이사이 정사를 돌봐야 하니 쉴 틈이 없다. 하지만 부지런함은 탕평을 낳았다. 왜? 경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 속속들이 신하를 알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 실사(實事)를 구할 수 있었을 테니. 사화를 이겨내는 힘은 부지런함으로부터 비롯됐다. 손자 정조도 영조를 본받았다. 영·정조 때 중흥을 이룬 힘은 부지런한 임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만 그랬을까. 한 시대를 연 인물은 모두 그랬다. 진시황제, 후금 누르하치, 청 강희제…. 모두 부지런했다. 진시황은 매일 밤 산더미처럼 쌓인 죽간을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시황을 일중독자라고 한다.

대면 보고를 받은 적이 드물다는 대통령. 어찌 봐야 하나. 영·정조처럼 열심히 사람을 만나 공부를 했다면 최순실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태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 주자들.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자부하는가. 부지런하다면 근정의 뜻은 깊이 깨닫고 있을까. 정도전이 근정에 덧붙인 말, “부지런한 것만 알고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부지런한 것이 복잡하고 세밀한 데로 흘러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귀를 열고 두루 말을 들으면 나라를 어찌 이끌어야 할지 저절로 보이지 않을까. 영·정조처럼. 이제 부지런한 정치 지도자를 보고 싶다. 귀를 열고 당파의 이익이 아니라 나라의 이익을 앞세우는 지도자를.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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