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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은 현모양처?… 왜곡된 삶 바로잡고 싶었다”

입력 : 2017-01-19 21:08:05 수정 : 2017-01-19 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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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소설 사임당’ 펴낸 이순원
“이제까지 내용과 자료는 오류투성이인 가운데 그냥 대한민국 교육 이데올로기처럼 예로부터 겨레의 어머니로 무조건 훌륭하고 존경할 어머니여야 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현모양처로 정답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 사임당의 삶에 대해 역사적으로, 또 문헌적으로 가장 정확하고 바른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소설가 이순원(60)이 ‘정본소설 사임당’(노란잠수함)을 펴냈다. 표제에 아예 ‘정본’(定本)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 자체가 이 소설의 성격을 웅변한다. 전화로 만난 이순원은 “율곡과 신사임당을 띄우기 위해 만들어진 엉터리 이야기들을 사실인 것처럼 말해 강릉의 후학으로서 이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2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밝혔다. 무엇이 엉터리이고 어떤 게 사실일까. 이순원은 최대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4남3녀를 두었던 사임당의 막내아들 이우의 시각으로 서술해 나간다.


강릉 출신 소설가 이순원. 그는 사임당의 후학으로 그녀의 본디 모습을 철저하게 기록에 의존해 밝혀냈다고 말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임당은 안견 이후 백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에 견줄 만한 최고의 화가로 기록돼 있어요. 그이는 그런 예술가였던 거죠. 하지만 이후 성리학 노론 소론 동인 서인의 입장에 따라 현숙한 부인으로 남았고, 구한말에는 군국의 어머니로 둔갑했으며, 박정희 정권에서는 육영수 여사 이미지에 맞추는 현모양처가 됐습니다. 요즘에는 강남의 극성스러운 교육 어머니로 바뀌었는데, 시대의 성격에 따라 야사까지 만들어져 왜곡됐습니다.”

사임당은 집 밖을 나가야 그릴 수 있는 산수화가의 대가였으며, 드물게도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가르친 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성정을 그대로 전수하는 과정이었을 따름이다. 딸 매창은 ‘작은 사임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에 능했고, 아들에게도 가야금을 가르쳤다. 요컨대 4남3녀의 개성을 존중해 그 아이들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살린 어머니였다. 율곡이 불과 열여섯살 때 사임당은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의 성공을 보고 죽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남편에게 재혼하지 말라고 한 것도 후대의 지어낸 이야기라고 작가는 본다. 


사임(師任)은 자신이 스스로 지은 호일 따름이고, 그녀의 이름은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후대의 엄격한 예법 때문에 자손들이 이름을 행장에 적어 넣지 못했던 이유로 기록에서 유실됐다. 1990년대 어느 동화작가가 사임당의 이름을 ‘신인선’이라고 문학적 호명을 한 이후, 모든 기록이나 학자들까지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양 그녀 이름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들어진 야사는 이렇다. 일찍이 ‘동계만록’에 사임당이 남편 이원수에게 자신이 죽으면 재혼하지 말라고 했다는 학문적인 기록이 정사처럼 등장한다. 이미 사임당의 남편은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율곡의 이 ‘서모’(庶母) 때문에 동인 서인 노론 소론의 갈등이 이어졌던 것도 흥미롭다.

“사임당 사후 180년 뒤에 나온 우스개 비슷한, 그를 띄우기 위해 만든 기록인데 사학자들은 실제 기록인 것처럼 말합니다. 율곡이 죽었을 때 친구의 수의를 빌려 썼다는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비를 200명 가까이 물려받은 집안에서 그리 가난했다고요· 엉터리 자료들이 시대와 작자의 입맛에 맞춰 왜곡되는 거죠.”

사임당으로 분한 배우 이영애가 등장하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될 예정이어서 이 정본 소설의 의미는 크다. 시류에 맞춰 소설을 썼을까. 이순원은 짐짓 손사래를 친다. 사임당은 그 시대에 드물게도 주체적인 화가이자 교육받은 어머니였지만, 그녀를 시대가 변할 때마다 이용했을 따름이라는 게 이순원의 분명한 기록 탐험 결과다. 강릉 출신 사임당 후학 이순원은 이렇게 책머리에 써넣었다.

“아홉 살 때 처음 오죽헌에 소풍을 가서 사임당을 만났던 소년이 이제 반백의 머리로 사임당의 삶을 다시 조명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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