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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AI 의사’ 출현 의료혁명… 인간 의사보다 더 신뢰

입력 : 2017-01-19 22:00:00 수정 : 2017-01-19 21: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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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기술과 가치관의 미래
최근 인간의 가치관 변화에 대해 상당히 놀라운 기사가 떴다. 인천 길병원은 지난해 11월 중순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의사 왓슨을 도입해 진료를 시작했는데, 약 2개월간의 진료결과를 발표했다. 길병원은 의료진과 왓슨의 처방을 비교하며 진료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대장암·위암·폐암·유방암·자궁경부암 등 5개 암 환자 85명에 대한 처방 내용을 공개했다. 그런데 환자들은 인간 의사보다 AI 의사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의사의 처방을 더 신뢰하는 환자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암 치료에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술을 먼저 할지, 항암제를 먼저 써서 암 크기를 줄여 놓고 수술을 할지, 수술 대신 방사선 치료를 할지 등 여러 선택이 존재한다. 그런데 인간 의사와 AI 왓슨이 서로 다른 처방을 제시했을 때, 환자들은 AI 의사의 처방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약 6개월 전에 어느 고등학교에서 과학특강을 하면서 약 200명의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인간 판사와 AI 판사를 선택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선택이 있다. 어느 판사를 원하겠는가·” 약 60%의 학생이 AI 판사에 손을 들었다. 이어 또 다른 질문을 해봤다. “인간이 운전하는 택시와 AI 택시가 있다. 어느 택시를 탈 것인가·” 50%가 AI 택시를 선택했다.

◆가치관의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가치관이란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이라 말한다. 철학의 목적이 가치관의 정립이라 할 정도로 가치관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이다. 나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상이 이렇게 나오면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는 식의 세상을 상대하는 나만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결정을 할 때 자신의 가치관에 비추어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가치관을 논할 때에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상대주의’와 ‘절대주의’가 그것들이다. 상대주의는 인식이나 가치의 판단에 있어 상대성을 주장하는 관점이다. 상대주의는 인식과 가치 판단 과정에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5세기경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말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주장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척도를 정하고, 그 척도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절대주의에서는 절대적 개념이나 판단의 기준이 존재한다고 본다.

◆세계관과 인생관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의 논쟁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앞 단계의 주제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관은 세상은 어떻게 돼 있다고 인식하는 관점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지식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천동설과 지동설, 무신론과 유신론, 진화론과 창조론, 그리고 우주선,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에 관한 지식은 세계관을 형성하게 해준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적인 현상을 알게 되면 세계관이 바뀌게 된다. 인생관은 주어진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대한 관점이다. 나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나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장애인인가 아닌가. 나는 부유한가 아닌가. 질병이 있는가 없는가.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나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등에 대한 나 자신의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다. 인생관은 세계관을 토대로 형성되기 때문에 세계관이 바뀌면 인생관도 바뀔 수 있다.

◆세계관이 변하면 가치관도 변화

우리의 세계관은 서로 같을 수 있다. 세계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별로 그 세계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세계관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에 따라 세계관은 변할 수 있다. 한편 모든 사람의 인생관은 같을 수 없다. 사람마다 출신이 다르고 성장배경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치관 역시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인생관과 가치관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같은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유사성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면서 가치관이 변화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죽음 후에 환생을 믿는 세계관 속에서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고, 또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이라는 장례 풍습이 가능했다. 아기를 잉태하는 과학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삼신할머니에게 지성을 드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교황청의 면죄부, 일부 왕족 사이의 근친결혼, 대원군의 쇄국정책 등은 세계관의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가정, 남아 선호사상, 귀족과 하인의 차별,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등에 관한 입장의 차이는 인생관에 따른 가치관 변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인식의 차이, 달팽이나 개고기를 먹느냐 여부도 인생관에서 비롯된 가치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치관도 세계관과 인생관이 변하면 바뀔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가치관을 바꾸는 의사 왓슨의 능력

왓슨은 미국 IBM이 개발한 AI 컴퓨터다. 2011년 왓슨은 TV 퀴즈쇼 ‘제퍼디’에 참가해 퀴즈 챔피언을 상대로 승리하여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그 후 왓슨은 암 진단을 비롯해 모바일 상거래 서비스, 호텔리어, 변호사, 요리사, 휴대전화 매장 직원 등의 업무를 학습해왔다. 길병원이 도입한 것은 퀴즈 대회에 나갔던 왓슨이 의사 훈련을 받은 AI이다. 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의학교과서, 1200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정형·비정형 의료데이터를 학습했다. 현재 사람 의사의 암 진단 정확도가 50∼60%인 데 반해 왓슨의 정확도는 90%에 가깝다고 한다. 이제 AI 의사의 처방을 더 신뢰하는 환자의 판단은 이해가 간다. AI 의사의 오진율이 훨씬 적다는 과학적인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동차와 달리기 시합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컴퓨터와 암산 시합을 하지 않는다. 수천만 원을 인터넷으로 송금해도 불안하게 느끼지 않는다. 운전원이 없는 지하철이 70㎞로 달려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1000m 상공에서 자동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표를 산다. 인간이 잘하는 것과 기계가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생각을 정리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환자를 진단하는 데 컴퓨터와 경쟁하려는 의사는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술

이제 가치관의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인간 사회에는 불변의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 살인과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는 가치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의 상당히 많은 가치관은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해 세계관이 바뀌면 변화하게 될 것 같다. 즉, 절대주의 가치관도 있지만 상대적인 가치관도 만만치 않게 많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용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전자투표는 안전성에 대한 의문 때문에 선거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병 인자를 제거한 인간은 비윤리성 때문에 태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언젠가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환자들이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사결정에 AI의 판단을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미래 가치관의 변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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