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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년의 세월을 빚었다…은둔의 고장 경북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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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9 13:00:00 수정 : 2017-01-19 13: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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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산맥에 감싸여 육지속 섬같은 그곳 / 91년 역사의 양조장 영양탁주합동 / 지금도 매주 한번 막걸리가 익어간다
영양군청 인근의 영양탁주합동은 올해로 문을 연지 91년이나 됐다. 경북에선 가장 오래됐다.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이 동쪽을 휘감고 있다. 태백산맥에서 줄기를 뻗은 일월산맥은 서쪽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내륙이든 해안이든 접근을 하려면 산을 타야지 가능한 곳이다. 쉽게 찾아갈 수 없었던 곳, 말 그대로 ‘오지(奧地)’다. 옛 지명 역시 산에 둘러싸여 숨겨져 있던 곳이기에 ‘고은(古隱)’이라 불린 곳이다. ‘육지 속 섬’과 같았던 이곳은 후대에 들어 이름이 밝은 꽃부리란 뜻의 영양(英陽)으로 바뀌었다. 지금이야 곳곳으로 도로가 뚫려 있지만, 경북 영양을 둘러싼 산세는 여전하다. 은둔의 지역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다. 지형 덕분인지 고집스럽게 외골수의 삶을 이어온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영양이다.

영양이 오지란 것을 알려면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봐야 한다. 영양에선 일월산이 유명하지만, 남쪽의 영양풍력발전단지로 방향을 잡는다. 맹동산 자락에 있다. 영양읍내에서 승용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영양풍력발전소’ 입구에 이른다. 이곳부터 산길을 타고 올라야 한다. 물론 승용차로도 가능하다. 꼬불꼬불 굽이치는 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사방이 트인 곳에 이른다. ‘OK목장’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길 옆에 서 있다. 맹동산 정상은 아니지만, 사방으로 서 있는 풍력발전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5분가량 더 차를 몰고 가면 도로반사경이 나온다. 
경북 영양은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이 동쪽을 휘감고 태백산맥에서 줄기를 뻗은 일월산맥이 서쪽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내륙이든 해안이든 접근을 하려면 산을 타야지 가능한 곳이다. 맹동산 영양풍력발전단지를 오르면 영양을 둘러싼 산들이 줄지어 내달리는 산맥의 파도를 볼 수 있다.
잠시 차를 세운 뒤 길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어 오르면 세상이 내 발밑에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영양을 둘러싼 산들이 줄지어 내달리는 산맥의 파도로 장관을 이룬다. 맹동산은 해발 800m를 약간 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주위에 시야를 가릴 만한 높은 산이 없다 보니 힘들이지 않고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쎄∼’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한두 대가 아니다. 저 멀리 시야가 흐려질 때까지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들이 거대한 날개를 돌리며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람이 강한 곳이기에 맹동산엔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돼 있다. 겨울철 오른다면 강한 바람은 감내해야 한다. 차를 흔드는 바람에 운전대를 두 손으로 꼭 붙잡게 된다. 맹동산은 민둥산으로 불린 곳이다. 바람이 강해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하고 풀이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맹동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숲보다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겨울철에는 채 수확하지 못한 배추들이 여기저기 그대로 남아있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자아낸다. 여름철에는 들판에 소를 풀어놓고 키운다고 한다.
영양군청 인근의 영양탁주합동은 올해로 문을 연지 91년이나 됐다. 경북에선 가장 오래됐다.
산을 내려와 영양읍내로 간다. 영양의 외골수를 봐야 한다. 군청 인근에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다. 나무 틈이 벌어진 오래된 미닫이문, ‘주류제조업’이 새겨진 녹슨 파란 바탕의 허가표시. 겉모습부터 범상치 않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닫이 문은 손님이 온 걸 알려주는 자동벨을 대신하듯 삐걱 소리를 내야지 열린다. 문을 열자 시금털털한 내음이 인사를 대신한다. 구수한 알코올 냄새다. 노란 박스에 가지런히 꽂힌 막걸리 병들이 눈에 띈다. 

올해로 문을 연 지 91년이 됐다. 1926년 일제강점기 때 터를 잡아 삼대에 걸쳐 이어온 양조장 영양탁주합동은 경북에선 가장 오래됐고, 전국에서도 오래된 양조장으로 손에 꼽히는 곳이다. 영양군은 전통과 자연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슬로시티 가입을 추진 중인데 이 양조장 역시 그 대상에 포함돼 있다. 
영양탁주합동 직원이 막걸리 제조공장의 배합장에서 쌀을 씻고 있다.
이곳을 찾은 날이 금요일인데 일주일에 한 번 막걸리를 만드는 날이었다. 다른 계절엔 좀 더 자주 막걸리를 제조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모내기철부터 추수철까지는 성수기이지만, 다른 때는 비수기다. 일곱 달 벌고 다섯 달은 까먹는 셈이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영양탁주합동의 집기들.
건물 안을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꼭꼭 잠긴 문이 있다. 발효실이다. 박물관 수장고처럼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두밥을 쪄 누룩과 섞는 배합장이 나온다. 지금은 기계를 쓰지만, 나무로 만든 옛 집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다. 양조장만큼 오랜 세월을 버텨온 기구들이다. 양조장을 짓는 데 쓴 나무들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드러난다. 쇠못을 안 쓰고 나무못을 써 파인 흔적 곳곳에 남아있다. 압록강 적송을 썼다고 한다. 100년의 세월이 녹아있는 막걸리 몇 병을 사들고 삐걱거리는 미닫이 문을 닫는다.

영양=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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