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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밉보이면 출전 못해요"… 성폭력 사각지대 유소년 운동부

입력 : 2017-01-18 17:11:30 수정 : 2017-01-19 14: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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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10명 중 6명이 감독·코치… 솜방망이 처벌 그쳐 / 초·중·고 운동부 성범죄 실태 / 선수 출전 영향력 막강한 지위 악용 / 운동 가르쳐준다며 ‘몹쓸짓’ 저질러 / 불이익 우려 신고 못하고 속앓이만 / ‘스포츠 인권센터’ 2009년 개설 불구 / 홈페이지 접속조차 안 돼 무용지물 / 성폭력 지도자 ‘영구제명’은 말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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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프로축구는 때 아닌 ‘성추행 스캔들’로 발칵 뒤집혔다. 은퇴한 축구선수 앤디 우드워드(44)가 BBC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유소년팀 시절 지도자이던 배리 베넬(63)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은퇴 선수의 용기 있는 고백은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유소년팀의 성추행 실태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유사 사례 제보가 빗발쳤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하면서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400여명에 달한다. 한국 유소년 운동부도 감독, 코치 등 지도자의 선수 상대 성범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성폭력을 비롯한 스포츠계의 4대 악을 근절하겠다고 했지만 체육계 성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세계일보가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대한체육회 공정체육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2012~15) 동안 스포츠 인권센터에 접수된 한국 유소년(초·중·고) 운동부 내 성범죄 신고 건수는 총 20건이다. 이는 같은 기간 성인 팀을 포함한 전체 운동부 성범죄 신고 건수(33건)의 60.6%에 달한다. 한국 역시 유소년 운동부가 심각한 성범죄의 ‘사각지대’의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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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58%는 지도자, 제도·교육 강화 필요

언뜻 적게 보이는 성범죄 신고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피해자는 선수생활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상처를 가슴에 묻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선수들은 경기 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에게 종속돼 있다. 일부 지도자들은 이런 지위를 악용해 어린 선수에 ‘몹쓸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실제로 유소년 운동부 성범죄 신고 사례가 공개된 19건 중 절반이 넘는 11건(57.9%)의 가해자는 지도자다.

2012년 서울 A중학교 배구부의 B감독은 4개월에 걸쳐 배구부 학생 6명의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추행을 일삼았다. 그는 운동방법을 가르쳐 준다며 학생들을 불러내 배구부 숙소나 체육관 등에서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 6명 중 3명은 추행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옮겨야 했다. 2014년 경기도 C초등학교 육상부의 D코치는 대회 참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학교 숙소에 머물며 자신이 지도하던 여학생을 폭행하고 강제로 추행했다.

이는 비단 유소년 선수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인팀을 포함한 체육 선수들의 성범죄 신고·상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 추세다. 최근 5년(2011~15)간 스포츠 인권센터에 성범죄로 접수된 신고·상담은 총 184건으로 한 해 평균 41건이다. 지난해에도 9월까지 20건이 접수됐다.

전문가는 정부가 제도 마련과 예방교육 강화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체육계 성범죄 문제가 대두된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선진 국가에선 스포츠 성폭력 피해 실태의 양적·질적 연구가 활발하며 예방교육도 철저히 이뤄진다.

일례로 미국고등학교체육연맹(NFHS)은 과도한 사적 대화 금지, 학교 밖 1대1 만남 금지 등 ‘학교운동부 성폭력 예방 10계명’을 만들어 체육지도자의 강령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정부 주도의 캠페인을 벌여 학생 선수의 인권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정책을 토대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0년 청소년올림픽에서 만화를 활용한 청소년용 성범죄 방지 교육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스포츠 성폭력 대책 헛심만 쓰는 정부

정부는 2008년 당시 한 지상파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체육계 성범죄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지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그중 하나가 2009년 문을 연 대한체육회 공정체육부 산하 ‘스포츠 인권센터’다. 이 기관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선수들의 신고·상담을 접수받으며 선수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

그런데 이 홈페이지는 접속조차 제대로 안 됐다. 실제 최근 기자가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해 봤는데 ‘신고 및 상담’ 메뉴를 누르자 오류 메시지가 뜨며 진행이 되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접속이 불안정한 상황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자정에 잠시 정상화된 접속이 다음날 오전이 되자 먹통이 되는 상황이 일주일 내내 반복됐다. 스포츠 인권센터 측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실무 부서의 안일한 대처와 더불어 정부는 허울뿐인 정책만 연이어 내놓아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2008년 문체부와 교육부, 대한체육회는 합동으로 ‘스포츠 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2014년에는 문체부 내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개설했고 지난해 1월에는 선수 또는 지도자가 폭력을 휘두르면 자격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를 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약들은 유명무실할 정도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성폭력 지도자를 영구제명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자격정지 처분에 그친 경우가 많다. 2014년 E대학 F감독은 미성년자인 학생선수를 2년간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지난해 3월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에서 최종 처분으로 자격정지 3년을 받는 데 그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헛심’만 쓰는 정부의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문체부와 법무부는 독립기구인 ‘스포츠 분쟁 중재기구’ 설립을 공동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성범죄를 포함한 선수의 각종 민원을 접수해 분쟁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미 이웃나라 일본과 영국 등 대부분의 스포츠 선진국에선 스포츠 중재기구를 설치해 선수들의 민원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기구 설립은 아직까지도 기약이 없는 상태다. 현재 선수 중재 관련 업무는 대한상사중재원을 비롯한 법무부 산하 단체에서 처리하고 있다. 스포츠 전문 중재기관을 만들기 위해선 중재위원단도 구성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하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장덕선 한국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체육계 성범죄 방지 교육과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며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내실 있는 교육을 더욱 확충해 지도자의 도덕성을 검증해야 하고 적극적인 신고문화 풍토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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