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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입양제도, 아이들이 위험하다] 온몸에 화상·멍… 4살 은비의 죽음

입력 : 2017-01-15 19:29:18 수정 : 2017-01-17 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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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판결 전에 양부모에 인계/학대 신고에도 조사 흐지부지/뇌사로 10개월 만에 결국 숨져/법원선 숨진 뒤 입양승인까지/아동복지 허점 여실히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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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은비(당시 3세·여·가명)는 새 보금자리가 생긴다는 꿈에 부풀었다. 17세에 은비를 낳아 키우던 친모가 딸을 A입양원에서 맡긴 지 1년 만이었다. 하지만 “애가 귀티가 난다”, “사랑스럽다”며 은비를 데려간 양부모는 “식탐이다”, “너무 눈치를 본다”며 갑자기 마음을 바꿔 파양했다. 은비는 입양 4개월 만에 상처를 입었다.

A입양원으로 돌아간 은비는 한 달 가까이 지내다 대구의 한 가정에 다시 입양됐다. 다른 형제들과 어울려 피아노를 치면서 새 둥지에 적응해 갔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4월 화상 자국과 함께 상처투성이인 그는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물고문의 징후로 여겨지는 저나트륨혈증 소견까지 확인한 의료진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조사에 나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병원 다른 관계자의 말만 믿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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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뒤 온몸에 멍과 상처가 난 은비는 심정지 상태에 놓여 또다시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이번에도 경찰과 당국이 나섰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은비는 뇌사판정을 받았다. 서울가정법원은 일주일 후 입양원이 양부모를 대신해 신청한 은비의 입양허가를 결정했다. 법원이 아이가 뇌사에 빠진 것도 모르고 입양을 허가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은비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이는 국가 아동복지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이들이 생활고 등으로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가 학대를 당해 숨지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친가정에서 버림받은 입양아들이 시설과 양가정을 오가며 홀로 고통을 견뎌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당국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부 시설과 입양아의 경우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입양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입양은 양가정에 대한 자격 조사와 부모교육을 거쳐 법원 판결 뒤에 아동을 인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은비의 두 차례 입양은 모두 법원 판결 전 ‘입양 전 위탁’ 형태로 이뤄졌다.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입양 전 위탁 사례는 2015년 한 해 376건에 달했다.

숭실대 노혜련 교수(사회복지학)는 “양가정 위주로 입양절차가 이뤄지다 보니 국내에서 입양아의 인권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며 “양가정에 대한 검토·조사를 비롯해 양부모 대상 교육·상담 등 입양의 사전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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