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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데이'가 뭐길래…서양명절에 전국 유치원이 '들썩'

입력 : 2016-10-23 09:31:41 수정 : 2016-10-23 09: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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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가면 준비에 학부모들 법석…"외국명절 여과없이 수용…아이들 간 위화감도 조성"
매년 10월 31일은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다.

유령이나 괴물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호박에 눈·코·입을 파서 등(燈)을 만들어 즐기는 서양 명절이다.

기성세대들에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외국 축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까지 핼러윈 데이 문화가 깊숙이 침투했다.

조기 영어교육을 강조하는 분위기에다 해외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핼러윈 데이 의상, 소품까지 최근에 쏟아지자 아이들 사이에선 꼭 챙겨야 하는 기념일로 부상했다.

그러나 내용이나 의미, 유래 등을 잘 모르고 상업화한 핼러윈 데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데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적으로도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까지 핼러윈 데이 열풍은 갈수록 거세진다.

부산의 한 유치원에 여섯살 딸을 보내는 김모(38·여)씨는 며칠전 딸로부터 친구집에서 여는 핼러윈 데이 파티에 초대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별 생각 없이 잘 놀다오라는 말을 한 김씨는 딸에게 핀잔을 들었다.

핼러윈 데이에 초대된 만큼 그에 맞게 꾸미고 가야한다고 떼를 썼다.

딸과 함께 대형마트에 간 김씨는 핼러윈 데이 코너까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법 쓸만한 핼러윈 가면은 3만원대였다.

망또 옷 등을 사려면 몇 만원이 더 들었지만 딸 성화에 사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씨는 핼러윈 데이의 의미나 유래를 물어봤다.

그러나 딸은 파티에 초대받아 가야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재미를 위해 논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외국에서 유래된 축제의 의미도 모른 채 시류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씁쓸하다"며 "관련 상품이나 코너도 발빠르게 나오는 것을 보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7살짜리 아들을 경기 성남 분당구 소재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는 직장인 이모(36·여)씨는 핼러윈 데이 준비를 이미 다 마쳤다.

그는 올해 영화 '스타워즈' 콘셉트로 의상을 정해 거금 5만원을 들였다.

1년에 단 하루만 입고 마는 점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이 씨는 지난해에는 스파이더맨, 재작년에는 아이언맨 의상을 구입해 아들에게 입혔다.

벌써 3년째, 앞서 큰 아이까지 합치면 6년째 핼러윈 데이마다 아이 의상을 정하느라 고심을 거듭한다.

이 씨는 "유아 영어학원 학부모들은 아이들끼리 서로 콘셉트가 겹치지 않게 하려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며 "아이들은 각자 돋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모로서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이어 "1만원대 의상도 많지만 그런 것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품질이 떨어져 아이들에게 입힐 수 없다"며 "앞서 큰 아이도 해마다 다른 동화 속 공주 의상을 입혔다"고 덧붙였다.

이 유아 영어학원에서는 핼러윈 데이가 되면 학원 인테리어를 바꿔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주변 상가 건물을 미리 섭외해 사탕을 맡겨두고, 아이들이 찾아가 핼러윈 데이 노래를 부르면 사탕을 나눠주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게 핼러윈 데이 축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유아 영어학원뿐만 아니라 주변 유치원에서도 핼러윈 데이 축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유치원에서 핼러윈 데이 행사를 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나선다.

자녀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거나 사는 곳이 가까운 부모들끼리 돈을 내 핼러윈 파티를 열어준다.

박모(36·경남 창원시) 역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학부모들과 함께 오는 31일 저녁에 핼러윈 파티를 열기로 했다.

박 씨는 "우리나라 명절도 잘 모르는 6살짜리 아이가 핼러윈 데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부모로선 외면하길 힘들다"며 "결국 파티때 아이에게 입힐 검은 망토와 마녀 고깔모자를 사고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사탕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 맘카페에는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어떤 의상을 어디서 사 입혀야 할지 고민하는 게시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작년에 아이에게 입혔던 할로윈 의상을 파는가 하면 서로 싼값에 옷을 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매년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캐릭터가 달라지고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의상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거금을 들여 옷을 장만하는 부모도 많다.

인터넷에서는 3만~5만원대의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드레스부터 수십만원에 달하는 한정 코스튬까지 할로윈 의상을 판다.

천사날개, 망토, 호박 바구니 등 소품도 1만~2만원대를 호가한다.

경기도 부천의 한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강모(27·여) 교사는 "요즘 대다수 유치원들이 이벤트 형식으로 할로윈데이를 챙기는데 부모님과 아이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더 좋은 옷, 더 예쁜 소품을 자식에게 들려보내려고 하다 보면 위화감도 조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애 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최근에는 핼러윈 데이가 유치원까지 연례행사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함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별로 없는 우리 실정에서 핼러윈 데이가 별 비판없이 받아들여진다"며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소비가 동반되는 외국 명절을 여과없이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미 가천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유아 영어학원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핼러윈 데이 축제는 단순히 흥미 유발로만 끝나고 있다"며 "용품(핼러윈 의상 등)이 중심이 돼 버린 탓에 같은 교육 기관 안에서도 (아이들 간)격차가 드러나게 돼 위화감을 조장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양 문화에 대한 추종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며 "각국의 고유한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다문화 교육의 목적과 부합하는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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