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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남은 건 상처뿐"…김정은의 '무수단 발사'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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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3 08:00:00 수정 : 2016-10-23 10: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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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되는 무수단 미사일. 노동신문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사거리 3500㎞) 발사에 대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집착이 강해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20일 “북한이 오전 7시쯤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 비행장 인근에서 미사일 1발을 발사했지만 발사 직후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미 공동평가 결과 무수단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번이 8번째로 지난 15일 7차 발사 실패 이후 5일만이다. 북한은 지난 4월 15일 첫 발사에 실패한 이후 13일만인 4월 28일 2~3차 발사를 시도했다. 5월 31일 4차 발사를 시도했으며 6월 22일 5~6차 연속 발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단 한 차례만 성공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실패했다.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통해 유사시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해 한미 양국의 대북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있지만 발사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에 대한 의문이 증폭돼 대미 전략도 단단히 꼬이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선거 전까지 무수단 발사를 가능한 많이 성공시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만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지만 전략적 효과는 이미 반감된 상태다. 이는 올해초부터 계속된 김 위원장의 핵능력 과시 행보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 무수단 발사 장소 변경에 숨겨진 의미

지난 15일과 20일 단행된 무수단 미사일 발사는 기존의 발사와는 다른 부분이 눈에 띤다.

가장 큰 특징은 발사 장소. 지난 6월까지 진행된 무수단 미사일 발사는 강원도 원산 인근에서 이루어졌다. 북한 동해안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잡은 원산만에 이동식발사차량(TEL)을 배치하고 무수단 미사일을 고각으로 발사했다. 6월22일에 단행된 6차 발사에서는 1000㎞ 이상 올라가면서 400㎞ 정도를 비행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일본 등 주변국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ICBM에 적용되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검증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수단 미사일. 노동신문

하지만 이달 들어 실시된 무수단 발사는 원산에서 서쪽으로 약 200㎞ 떨어진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진행됐다.

북한이 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비행거리를 최대한 늘릴 필요성이 있었다는 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다. 북한이 그동안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고각발사를 고집한 것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영해와 영공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발사시험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무수단 미사일의 비행거리와 정상적인 대기권 재진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작 당시 설정한 사거리만큼 날려 목표 수역에 정확히 꽂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수단을 최대 사거리까지 발사할 경우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시도 가능성은 낮다. 결국 비행거리를 최대한 확보하면서 추락 시 중국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북중 접경에서 떨어진 평안북도 내륙 지역이 가장 적합하다.

한미 연합타격자산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 시험발사가 이루어진 강원도 원산은 동해상과 인접해있다. 지상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미국 이지스구축함들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까지 진출하는 상황에서 원산 일대는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특히 내년부터 전력화되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유도미사일(사거리 500㎞)이 투입되면 평양 인근도 안심할 수 없다. 반면 평안북도 일대는 북중 접경 지역이다. 한미 해상전력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이 일대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탄도미사일 정도지만 TEL을 탄도미사일로 파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유사시 진짜 쏜다”는 엄포, 효과 ‘없음’

북한의 이같은 행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수단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인 10여년 전과 달리 “여차하면 진짜 발사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SLBM 수중사출시험을 참관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노동신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도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향해 위협적인 언사를 퍼붓고 핵실험을 실시하며 위성 탑재체라 주장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행동만 보면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음에도 ‘우주개발’ ‘과학연구’라고 강변하며 무수단과 같은 중거리 이상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시도하지 않았다.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운 군사행동으로 미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때문에 김정일 체제에서 북한은 실제 발사 대신 열병식에서 무수단과 KN-08 ICBM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미사일의 실체를 주변국에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같은 ‘전략적 모호성’은 “수십년 동안 러시아가 사용한 SS-N-6에서 파생된 무수단은 시험발사를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신뢰성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덕분에 김정일 체제에서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도 전략적 억제능력을 일정부분 확보할 수 있었다.
열병식에 등장한 KN-08 ICBM 개량형. 노동신문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전략은 180도 바뀐다. ‘전략적 모호성’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한국과 미국을 향해 자신의 군사적 역량을 모두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14년 북한 전역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해안포를 발사하며 우리 측을 압박한 북한은 지난해 5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 사출시험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핵능력 과시에 나섰다. 같은해 8월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 포격도발을 감행한 북한은 올해 1~2월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단행했다. 3월에는 고체로켓엔진 시험, ICBM 탑재 핵탄두 설계도 공개, 대기권 재진입 모의시험 등 핵 관련 기술능력을 관영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4~9월까지 무수단, SLBM, 노동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으며, 5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정지궤도 위성 로켓 엔진 시험도 감행했다. 이같은 행동들을 통해 북한은 한미 양국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설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포 앞바다에서 시험발사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노동신문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 성공은 김정은 체제의 대외 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공약이 확고해지는 상황에서 한반도 남부에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고, 동해와 서해상에서는 토마호크, 현무 함대지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한미 양국의 이지스함들이 작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을 감행할 수 있는 ‘창과 방패’가 한반도에 구축되는 현실에 맞서려면 ‘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무수단은 괌 타격이 가능하며 KN-14 ICBM의 1단 엔진이기도 하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한다는 북한의 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무수단 미사일 발사가 계속 실패하면서 북한의 의도는 크게 엇나가버렸다. 발사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에 대한 의구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략적 억제능력도 훼손될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이 무수단을 처음 발사한 지 두 달만에 400㎞를 비행하는데 성공한 것은 이같은 위기 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김정은의 ‘속도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발사 실패로 김정은은 발사가 성공할때까지 무수단을 또다시 계속 쏴야하는 딜레마에 처했다. 거듭된 시도 끝에 발사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냉정한 시선은 막을 방법이 없다. 억제능력이 반감된다는 얘기다.

북한이 미사일을 통한 전략적 억제능력을 회복하는 방법은 KN-14 ICBM 시험발사나 정지궤도 위성 발사, SLBM 발사 정도다. 하지만 KN-14는 완성되지 않은 미사일인데다 태평양을 향해 실제 발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지궤도 위성 발사도 ICBM의 핵심인 대기권 재진입 능력 과시에는 별 도움이 안되고, 단기간 내 발사가 가능하지도 않다. SLBM은 개발 초기라 실질적인 위협 수단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김정은에게 남은 ‘카드’는 무수단을 계속 쏘아올리는 것뿐이지만 그나마도 효과가 떨어진다. 핵투발능력을 확보해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겠다는 김정은의 전략은 벽에 부딪힌 것이다. 한미 양국을 압박할 충격 요법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있을까. 무수단 발사 없이도 전략적 억제능력을 유지했던 아버지의 치밀한 정략을 이어받지 못한 채 ‘유일적 영도체계’의 단맛에 취해버린 후계자의 정치적 능력으로 볼 때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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